잘한다 잘한다 소리에 작두에서 춤이라도 출 기세였죠.
사실 재밌습니다
엄청.
텃밭에 조랑조랑 달린 붉고 노란 열매들을 보고나면
그 잔상이 시도때도 없이 어른거립니다.
제게 텃밭이란 어린 왕자의 별과 같습니다.
어린 왕자의 별에 그만의 특별한 장미가 있다면
제 텃밭별에는 나만의 채소와 꽃들이 있죠.
제가 돌보지 않으면 무성한 풀들에 둘러싸여 숨이 막힐 테고
물을 주지 않으면 목이 탈 겁니다.
네, 그래서 텃밭에 꿀단지라도 묻어둔 양
눈만 뜨고 해 뜨기 무섭게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덜컥 허리병이 도졌어요.
실로 오랜만입니다.
그렇잖아도 얼마 전
이정도 체력이면 특전사 부대에 입대를 하고도 남네 어쩌네
입방정을 떨면서 속으로 너무 멀리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입방정이 완전 허언만은 아닌 게
이전과 달리 회복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릅니다.
말이 씨된다니 이런 입방정은 자주 떨어야겠어요.
어찌됐건 허리에 밸트차고 똥 싼 바지 입은 아이처럼 어그적거리며
한 이틀 보내느라 알뜰하게 세워놓았던 주말 계획은 전면 무산되었습니다.
일요일 꽃동무들과 떠나는 꽃구경이야 하루 빠진들 무슨 대수겠습니까만
토요일 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관람과
특강을 취소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운명이 한 짓이라면 더 이상 잔인할 수 없을 사고로
평생을 육신의 고통 속에 갇혀 살았다는 프리다 칼로,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조차 예외는 아니었죠.
오래 전 책에서 처음 본 그림은
치열했던 그녀의 삶과 사랑 만큼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튼 전문 강사에게서 프리다 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는데
그만 놓쳐버렸어요.
예전에 비하면 엄살 수준의 허리병을 핑계삼아 잘 쉬긴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벌써 7월,그리고 월요일.
수첩을 펼치고 적습니다.
생쪽 염색하기,에코 프린팅 해보기.유칼립투스 화분 구입하기,
홍화꽃차 만들기,홍화꽃잎 채취하기,오이지 담그기...
해야할 일들이 늘어날수록 가슴이 설렙니다.
하루 종일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누워있던 토요일 저녁이었어요.
동생들이 모였다기에 언니는 못 간다,재밌게들 놀아라 했죠.
운동장 한켠에 자리를 펼친 동생들이 연신 사진을 찍어 보냅니다.
안 가고 배길 재간이 없습니다.
허리를 단단히 조이고 의자를 챙겨 갔습니다.
뜨끈한 바지락 육수에 말아준 쌀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가몬팁이 요리한 태국식 새우볶음면도 달게 먹었어요.
사위가 어둠에 잠기기 시작하자 불꽃놀이가 시작됐습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진통제보다 백배 낫더군요.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반 넘게 나아있었습니다.
입이 저렴한 제가 떠들고 다녀 농장주 내지는 준농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요.
누굴까요?
상추 봉다리를 걸어두고 가신 이웃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