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투구꽃은 유난히 보랏빛이 짙습니다.
한 시간 전쯤 보고 온 큰제비고깔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이라 언듯 같은 꽃인가 했지요.
대체로 순한 빛깔 일색인 야생의 꽃중에 큰제비고깔처럼 도발적인 청보랏빛은 흔치 않습니다.
제 변변치 못한 경험으로는 그래요.
사기충천 병사들의 행군을 보는 것 같아 꽃 앞에서 예쁘단 말은 안 나옵니다.
거참!씩씩하게도 생겼네,짜슥들.
청순과 요염, 두 얼굴의 대덕사 물매화에 비해
이곳 물매화는 무명옷 입은 동네 처녀들 처럼 소박하고 정겨웠죠.
바위 틈에 또 바위 위에 소담스럽게 핀 물매화에 눈 맞추느라 홀대한 좀개미취입니다.
사실 흔치 않은 식물인지도 몰랐죠.
그저 이맘 때 피는 널린 개미취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말간 제 모습을 물에 비춰보고 섰는 양이 신화 속 나르시스를 연상케 하더군요.
해서 지나치려던 걸음을 잠시 멈췄습니다.
좀개미취는 오대산 이북의 산골짝의 냇가 근처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작고 가지가 많이 갈라져서 옆으로 넓게 퍼져 자라면서 많은 꽃을 피우는 것이 특징이다.
(이야기로 듣는 야생화 비교도감. 이명호 지음 참고)
특징의 살펴보니 좀개미취가 맞군요.
신경 써 살피지 못한 게 많이 아쉽습니다.
잔대
물매화와 좀개미취
산구절초
물가에 핀 각시취는
운탄고도 하늘길에서 본 각시취 대군락과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소리로 스며들어 감성을 적시는 물의 효과일까요?
어쩐지 더 여리여리한 게 애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배경이 이렇게 중요해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꽃의 가치와 이미지도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걸 많이 봅니다.
해를 따라 무작정 나왔을 겁니다.
볼그족족한 열매를 맺기까지 거친 바람과 한여름 자갈돌의 열기까지 견뎌야 했을 것들이 많았을 테지요.
개버무리 군락을 찾았으니 빨리 와보라는 실땅님의 독촉은 잠시 무시했습니다.
이름을 알았으면 불러줬을 텐데...그저 매초롬한 잎 쓰다듬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습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수박풀입니다.
단단히 끝을 여민 만두같기도 하고 속 터진 만두같기도 한 열매조차 예쁘네요.
짝사랑 기간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뻔 했던 그 시절, 친구가 제게 묻더군요.
도데체 그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아?
그냥...
수박풀이 왜 그렇게 좋아? 물어도 마찬가지죠.
그냥...
가을이라고,
단풍들었습니다.
와아! 개버무리다로 시작한 고음의 감탄사는 여기도! 저기도! 하는 사이 슬그머니 사라졌죠.
이거 거의 사위질빵 수준 아냐?
여기 싱싱하고 예쁜데 찍어 봐.
질리게 봤음 됐지 뭐.
뭐 다른 건 안 보여?
시선과 마음이 돌아서는 데 한 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개버무리 군락 반대쪽에서 뭐 다른 거 하나를 찾긴 했죠.
꽃봉오리를 보아 자주색 꽃이 필 것 같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자주쓴풀이겠지요?
하늘길 도착지였던 하이원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입니다.
수요미식회에도 나왔다더라 하길래 조금 부담스런 거리에도 불구하고 달려갔습니다.
감자전,메밀국수는 기대 이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