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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와 풍경

제주 둘째 날

by 타박네 2018. 5. 28.

   제주의 거뭇한 현무암과 샛노란 말똥비름의 조화는 익숙했다.

   내가 사는 연천도 겨우 몇십만 년 전 화산이 폭발했던 화산지대다.

   흘러내린 용암은 강을 따라 흘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무암과 기묘한 주상절리는

   계절마다 산철쭉 돌단풍 포천구절초 강부추 등 다른 빛깔의 꽃들을 바꿔 품는다.

   강 언덕 위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절벽 아래  크고 작은 바위 사이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놀았다.

   현무암의 송송 뚫린 구멍들로 인해

   바닥이 닳은 고무신을 신고도 미끄럽지 않아 좋았었다.

   노란 원추리꽃이 너울대기 전,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둘 다 좋을 이 즈음.

   햇살과 바람 잘 드는 언덕 한켠에 있던 아기무덤에 친구와 앉아 있곤 했다.

   조잘조잘 떠들다 나른해질 무렵 불현듯 생각난 무엇이 있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키 작은 아이의 눈으로 봤을 때

   거의 집채만한 바위와 제 몸만한 바위와 주머니에 넣고 오기 딱 좋을 크기의 돌덩이가

   아무렇게나 널린 돌밭 사이를 어슬렁거렸다.

   거기였구나.

   바위에 기대어 노랗게 꽃을 피웠던,

   나직한 돌담 아래 소복하던 돌나물.

   그 많던 바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참 많이도 파헤쳐졌고 뽑혔고 트럭에 실려 사라졌다.

   바위들 사라진 자리에서 돌나물만 더 극악스러워졌다.

   요즘 나는 텃밭에서 꽃잔디를 먹어치우는 돌나물 처치하느라 죽을 맛이다.

 

   처음 말똥비름을 보고 의심의 여지없이 어, 돌나물이네 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잎이 뾰족한 돌나물에 비해 말똥비름은 동글동글하다.

   순하고 깜찍한 모양새다.

   제주뿐 만이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식물이라고 하는데

   나는 제주에 와서 처음 보았다.

   어쩌면 보고도 돌나물이려니 했을 수도 있겠다.

    

 

 

 

 

 

  멀구슬나무

 

 

   석곡

 

 

 

 

 

 

   백약이오름

 

 

   가시엉겅퀴

 

 

 

 

 

   서양금혼초(개민들레)

 

 

 

  

 

   생각보다 작은 절 근처였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자 키 큰 나무들도 어둑한 숲이 이어졌다.

   나도수정초는 여기저기 많았다.

   아름답고 치열했시간들은 이미 지났다.

   지치고 초라한 지금의 모습은 초로의 가장들을 연상케 했다.

   이제 그만 쉬어도 좋겠다.

   그럼에도 내 눈에는 여전히 아름답다.

   은가루 뿌려 지은 듯 새하얀 비단 날개옷 차려 입고

   그 누구보다 빛났던 때를 나는 알고 있으므로.

   하얀꽃과 빨간 열매를 동시에 달고 있는 호자나무.

   나무 크기에 비해 과도한 가시를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소유하고 있는,

   마지막 남은 것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 클수록,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을수록 가시는 더 날카롭고 커지는 법이다.

   내가 다 해봐서 안다.

   가시가 많다는 것은 삶이 고단하다거나 겁이 많다는 뜻이다.

 

 

 

   큰천남성

 

 

 

 

 

 

 

 

 

 

 

 

 

 

 

 

 

 

 

   장난~ ^^

 

   노란별수선,등심붓꽃을 끝내 못 찾고 돌아섰던 어느 무덤가에서~

 

   골무꽃

 

   개구리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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