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요즘 밭에 안 가요?
며칠 전 파롱이 내게 물었다.
눈치 빠른 나는 대번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지만 짐짓 모른 척 했다.
열심히 가고 있는데 왜?
그런데 왜 풀만 무성해요?
담장 밖에서 봐서 그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완전 달라.
어느 정도 진실이다.
길가에서 언듯 봤을 때와 쪽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아마존의 밀림과 뒷동산 풀숲 정도?
무더위와 필요 이상의 비가 풀들만 편애하는 이맘때면
내 절망과 죄책감은 극에 달한다.
잘 거둬 먹인 부잣집 남의 자식처럼 통통 살오른 쇠비름 무더기 속에서
배들배들 꼬여가는 가지나 고추를 볼 때마다
데리고 들어와 눈칫밥 먹이는 자식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쩌자고 이짓을...
두 해째 휘둘러 끝이 부러져나간 작은 낫을 들고 밭고랑에 쪼그려 앉았다.
경험상 호미보다는 힘이 덜 든다.
그것도 결국 시늉만으로 끝났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다.
내일 남편에게 비굴한 웃음을 날리며 부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오는 족족 뽑아버려 담장을 뒤덮는 사태는 막았다.
큰조롱
식용보다 잡초제거 목적으로 군데군데 심어둔 솔부추.
한 번도 수확한 적 없는 초석잠.
그저 꽃이면 족하니까.
치커리
아욱
거름을 넉넉히 줘야 이 빠진 모양으로 나오지 않는다는데
그러자면 우선 당장 무릎까지 차오른 비름나물과 방가지똥들을 무찔러야 한다.
뿌리가 독하게 흙을 부여잡고 있어 내 힘으로는 어렵다.
살구는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가지가 휘었다.
대신 알이 자잘하다.
호박은 세 종류를 심었다.
내가 신데렐라 호박이라고 말하자 미니가 아,맷돌호박이요? 단박에 알아들은 이것.
아직 풀밭이 많다 하니 전곡 시내 종묘상하는 지인이 아무렇게나 묻어두라며 잔뜩 챙겨준 주키니호박,
그리고 애호박.
울타리 아래 심어둔 애호박을 제외한 두 종류 호박 거의 대부분은 일전에 풀과 함께 비명횡사했다.
남편의 무작스런 낫질에.
요행히 살아남은 것들은 이제 몸집을 키워 누가 봐도 호박이므로 안심이 된다.
대궁이 한뼘 이상 올라온 상추를 뽑아버리고 새 모종을 사다 심었다.
동네 어르신들,장마 앞두고 상추모종 심는 사람이 어딨느냐,다 녹아 없어질 거다 혀를 끌끌차셨다.
여기요.
두고 보세요.
아홉시 뉴스에서 상추가 금추라는 소리 나올 때 소쿠리 가득 뜯어다 배 터지게 먹을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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