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처럼 너울대는 상추잎과 부활의 달인 부추,손부채만한 들깻잎,
미끈하게 쭉 뻗은 가지와 며칠 사이 늙어버린 오이를 따 모으니 큰 비닐봉투 하나 가득이다.
오늘 수확한 채소는 모두 지주님께 상납했다.
지주님의 수고로움을 덜어드리고자 채소 일체는 수확 즉시 다듬고 씻어 단정하게 개별포장했다.
그것으로 소작농의 마지못한 의무가 아니라 기꺼운 마음이었다는 걸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그리고 운전 마지노선인 동두천까지 차를 몰아 신속히 배달을 마쳤다.
돌아와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7층 베란다 창 밖으로 빼꼼 얼굴을 내민 어르신이 소리쳐 부르신다.
커피 마시고 가.
기분 좋은 호객행위다.
넵! 올라 갈게요.
강바람 들락날락해 시원한 어르신의 부엌 식탁에 앉자마자 먹을 것들이 차려지기 시작한다.
5분 간격으로 냉장고 문이 열리고 닫힌다.
아, 이제 정말 못 먹겠어요.
상반신을 식탁에서 가능한 멀리 밀어보지만 어쩔 수 없다.
포크에 찍힌 과일과 빵이 연신 코 앞으로 배달된다.
참, 커피 준대놓고.
아니요,커피는 다음에.
왜? 커피 좋아하잖아.
커피라면 이미 배터지게 마셨어요.
결국 따님이 사주셨다는 고급커피는 다음 꽃소풍 때 친구들과 마시겠노라 약속하고 챙겨왔다.
먹어라 하고 사양하고 그리고 받아 먹고 다시 먹어라 먹어라 하고 격하게 손사래 치고 또 받아 먹고...
겨우 자리를 뜨려는데 같은 층 대장 어르신이 열린 현관문 안으로 쑥 들어오신다.
누가 왔어?
이미 누군지 봐놓고도 물으시니 대답은 한다.
저요.
방에서 의자 하나가 들려나오고 엉거주춤 섰던 나는 다시 주저앉는다.
사람 들어오자 가는 건 어느나라 법이여?
그리고 다시 2차 먹자전.
얼마 전 몹쓸 현장, 텃밭을 봐버린 대장 어르신이 합석을 하자 화제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흘렀다.
보나마나것지 뭐.
장마 지난 복 더위 속에 풀들이 오죽하겠냐는 말이다.
그래, 뭣뭣을 심어놨던가요?
좋은 거 있음 가서 뜯어 먹읍시다.
먹이는 일에 남다른 능력을 소유하신 어르신이 대장 어르신께 물었다.
올 것이 왔구나...나는 열린 현관문 밖 저 멀리 허공 어디쯤에 시선을 고정하고 클클 웃었다.
어디서 다 주워다 심었는지 백 가지도 더 돼.
풀은 또 어찌나 우거졌는지 호랑이가 새끼 치게 생겼드만.
지난번엔 호랑이 나오게 생겼다더니 그새 새끼까지 등장한다.
다음엔 나도 한번 따라 가봐야겠네.
풀 좀 정리 되면요.
어르신들 앞이라 그게 다 이유 있는 자연농법이니 어쩌니 구라뻥은 못 치겠고
세상이 변해 그런가 풀들도 여간 독해야 말이죠,
내년에는 고랑을 시멘트로 발라버리던가 현수막을 뜯어 깔던가 무슨 수를 내긴 내야겠는데...
내 어조가 제법 심각해 보였는지 대장 어르신,
이번에는 갈아 엎어뿌라 마! 이 말씀 안 하신다.
채송화에 포위당한 고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