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시에서 여덟시반, 텃밭으로 향하는 시간이다.
근처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기에
등교하는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와 등교를 돕는 학부모들과 차량으로
하루 두 번쯤 있는 번잡함을 뚫고 지나간다.
어쩌다 조금 늦으면 거리는 다시 적막한데 그 적막을 나 만큼이나 싫어하는
참새 서너 마리가 콩콩 뛰기도 하고 포로로 날기도 하고
그 사이로 동네 강아지 똘이도 어슬렁 어슬렁,
할매 유모차 달달달...
피고 지고 또 피는 소래풀은 열꽃 안 부러운 효자,
흥부 뺨 치게 자손 불린 참나리,
돈값 하라 보채지도 않았건만 겨울 잘 견디고 튼실하게 자라준 흰금낭화도 효녀다.
너른 잎 살그머니 들춰보니 딸그랑 소리도 없이 오종종 매달고 있는 은방울꽃,
요 앙큼한 녀석!
지난해는 산국이었다면 올해는 구절초와의 전면전.
뽑아도 뽑아도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번뇌처럼 어찌나 독한지.
그대로 두면 용담과 수선화와 무스카리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기세다.
하지만 아직 너무 어린 새싹.
불쑥 날 좁은 호미를 들이댔다가도 멈칫한다.
다 살자고 나왔지 죽자고 나왔을까...어느 할매의 독백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잘라 먹기 무섭게 다시 자라는 삼잎국화와 부추를 볼 때마다
자연 치유,재생 능력에 감탄한다.
초록의 힘은 참으로 경이롭다.
지상에서 인간만큼 불완전한 존재가 또 있을까.
며칠 전,고추,가지,방울토마토,오이 모종을 심었다.
퇴비를 넉넉히 치고 이장님이 주신 영양 알갱이들도 듬뿍 줬다.
이로써 텃밭은 누가봐도 번듯한 밭꼴이 되었다.
그러면 뭐하나.
결국 헛삽질.
하루 하루 잎들은 타들어가고 있다.
내 밥은 굶을 망정 물 주기를 게을리 한 적도 없건만.
벌써 두어 뺨은 자란 이장님댁 고추모종을 보고는 여쭤봤다.
열매 달리는 데 주면 아주 좋다는 그 알갱이를 아끼지 않았는데
우리 고추는 왜 그 꼬라질까요?
서너 차례 질문과 대답이 오간 뒤 결국 방법에서 그 차이를 찾아냈다.
나는 한 움큼씩 던져넣은 구덩이에 모종을 그대로 심었고
이장님은 고루 뿌린 뒤 흙과 잘 섞었다고 한다.
가스가 찼다고, 그래서 배들배들 마르는 거라고.
고추와 가지는 가망이 없지만
회생의 여지가 보이는 방울토마토 주변을 호미로 둥글게 팠다.
그리고 호스를 끌고 와 익사하지 않을 만큼 물을 퍼부었다.
부디 독이 된 알갱이들이 씻겨 나가길!
꽃친구 할머니의 비법대로 돌나물을 무쳤다.
나물 차체의 독특한 향 탓인지 양념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어때? 물으니
그맛이 그맛이라는 대답.
소송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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