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김서령
가을볕은 채소와 과일을 널어 말리기에 딱 알맞은 볕이다.
곶감과 호박과 가지와 토란대를 말리던 볕은
감 껍질에도 골고루 스며들었다.
그래서 밤이 한정 없이 길어지는 12월,
우리집 안방에서는 그 볕이 조금씩 풀려나왔다.
나른하고 따스하게 그 볕을 쬐며 아지매와 할매들은
도란도란 좋은 소리만을 주고받았다. 91p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않은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95p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라는 백석의 시다.
뭉근하게 번지는 따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