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누구에게나 있고 내게도 비켜가는 법 없는
이런저런 고통과 분노와 욕망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웃고 있는 나에게.
나를 스치고 가는 시간들이 남기고 간,
퇴행성 관절염이며,주름,검버섯,심각 단계의 건망증같은 흔적을
무공훈장처럼 자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나에게.
아름답지만 무익한 것들을 조금 더 사랑하는 나에게.
이렇게 살아줘서 고마운 나에게.
내가 나에게.
아직도 온라인 주문을 하지 못한다.
해서 책을 사야할 때는 목록을 적어 남편에게 내민다.
평소엔 두 권이나 많아야 세 권 정도.
이번에는 열 권을 한꺼번에 부탁했다.
뭔가 충만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기분좋은 허기 앞에 잘 차려진 밥상같은.
남이 정색을 하고 주면 여전히 멋쩍은 게 선물이지만
며칠동안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며 건져올린 책들이 박스에 담겨
내 앞에 툭, 떨어지니 무슨 횡재라도 한 것처럼 앗싸리한 기쁨.
내년에는 더 통크게 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