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 황석영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66p
내 마음 정한 곳은 당신뿐이니 ,세상 끝에 가더라도 돌아올 거요. 87p
사는 게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즐겁고 날씨 바뀌듯 하지 않습디까?
일테면 기쁨과 즐거움은 새벽이슬처럼 덧없이 스러지고
슬픔은 상여 타고 북망으로 갈 때까지 길게 이어진다오.
인생이 고해라고 하지 않소?
살며 겪은 것들이 녹아들어야 그늘이 생긴다고 하지요.
남도의 소리는 그늘에서 시작되오. 353p
향아설위라고 내가 적어두었지.
벽과 나 사이에 큰 틈이 있다는 말씀이 벼락 치듯 하였소.
그 벽에 귀신이 어른거린다고 밥을 밀어놓고 나는 절하라는 것은 누가 시킨 것일까.
그러한 법식은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그리고 아녀자들은 하루 종일 뒷전에서 일하고 음식 차려다 갖다 바치고
제사 참례는 얼씬도 못 하게 하는 제도는 누가 만들었을까.
땀 흘려 농사 지어 거둔 곡식을 차려놓고 나 아닌 벽에다 바치게 누가 만들었나.
그것을 만든 것들이 세상의 법식과 제도를 짓고 덫을 쳐서 공으로 빼앗아 먹으려고
틈을 벌려놓았다는 우레 같은 말씀이라오. 449p
한솥밥 먹는 냥이가 모두 네 마리.
아무래도 공공 장소다 보니 이래저래 눈치가 보인다.
정작 먹는 냥이들은 무신경, 카사장 속이 편치만은 않다.
덩달아 바람잡은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