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더니 아주 벌러덩 드러누워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잡고 일어설 무언가를 찾느라 한겨울을 다 보냈구요.
넋 놓고 앉은 자리에서 문득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 새 봄입니다.
봄만큼 큰 위로와 축복은 없죠.
지난 해,늦가을이라거나 초겨울,뭐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귀한 손님 두루미들이 날아들기 시작했고 절기를 무시한 따순 햇살에
화들짝 놀란 길가 개나리가 황급히 꽃망울을 밀어 올리고 터뜨리느라 수선스러웠으니까요.
카사장의 생일이 이 즈음입니다.
숫자 기억에 남다른 피로감을 느끼는 터라 무슨무슨 기념일 따위는 애써 기억하지 않지만
하필이면 동시대에 태어나 어쩌다 제 길벗이 되어 함께 걸어주는
그 소중한 인연의 고마움까지 잊고 살지는 않습니다.
'함께'는 또 봄만큼이나 큰 위로와 축복이거든요.
본격적으로 길을 걷기 전,국수가 불어터지기 전 서둘러 먹어야,먹여야 했기에
길 초입에 있는 볕바른 묘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효심 깊은 자손들이 어찌나 살뜰하게 관리하는지 죽을 날 받아두지도 않은
제가 지나갈 때마다 부러운 시선을 던지곤 했었죠.
묘 한쪽에는 대리석 테이블까지 있는데요.
가끔 그곳에서 차도 마시고 간식도 먹곤합니다.
물론 고인께 감사 인사는 드리죠.
깔끔한 뒷정리는 당근!두말 하면 잔소리,입만 아프구요.
장수 기원을 담은 잔치국수 한사발과 고추장떡 몇 조각 먹고나자
그대로 내려간다 해도 하나 아쉬울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나란히 걷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가 추수 끝난 들판에서 콩알 좀 줍다가...
뭐 그렇게 쉼표 하나 톡 찍었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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