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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Book소리

수상한 라트비아인

by 타박네 2011. 12. 26.

 

벨기에 작가 조루주 심농의 추리소설 '매그레 반장 시리즈' 총 75권이

5월부터 열린책들에서 매달 2권씩 출간되고 있다.

그 첫 번째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읽기에 앞서 작가의 삶을 낱낱이 파헤친

조루주 심농.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모르면 몰라도 기네스북에 다양하고 기괴한  작가의 기록들이 여럿 오르지 않았을까 싶은

놀라운 이력은 차치하고라도

먼저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검정과 흰색으로 디자인한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표지.

그리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책의 크기다.

 

사후 박물관에 기증될 명예로운 타박족(평생 민쯩 하나로 21세기를 살았다 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인 

내 이동 수단은 대부분 BMW, 대중교통 아니면 나이스 신고 무식하게 걷기다.

그러다 보니 집 나설 때 책 한 권쯤은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습관인데

요즘 책들이 고급화 되면서 무겁기만 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매그레 시리즈는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합격! 흡족하다.

조루주 심농은~

전 세계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5억 권 이상 팔려나간 작가.

20여개의 필명으로 4백 편 이상의 작픔을 썼으며

카뮈, 지드, 헤밍웨이 등 대작가들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은 문호.

하루 창작의 무게가 8백 그램이라고

글을 쓰기 전과 후의 몸무게를 달아 그 차이를 알아낸 작가.

60편 이상의 극장 영화와 3백 편 이상의 텔레비젼 영화가 만들어 졌고

오늘날 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의 작가' 그리고

여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1만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고 주장하는 정력적인 남자 혹은 구라뻥 대마왕.

정말이지 이 정도의 이력이면 안 볼 수가 없다.

 

과시욕에 불탄 마초라 해야할 지 순수하다 해야할 지......

그림 하나를 놓고 예술과 외설을, 글 하나를 두고 호평과 혹평을 넘나드는 경우처럼

참으로 애매한 작가의 여성편력이 사실 제일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그의 글은 의외로 담백, 깔끔하다.

 

"만일 비가 온다면, 나는 <비가 온다>라고 쓸 뿐이오.

내 책에서는 물이 진주가 되는 일 따위는 눈을 부릅뜨고도 찾지 못할 거요.

나는 문학 비슷한 것은 도대체 원치 않소.

나는 문학이 끔찍하오."

평소 온갖 거지발싸개같은 수식어란 수식어는 다 동원해 말장난을 즐기는 나로선

그렇게 신선한 충격일 수가 없다.

 

작가의 삶에 호기심을 자극 받아 장장 75권, 그 첫 번째 이야기에 발을 디밀어 보았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의 형사 매그레 반장.

트렌치코트와 줄기차게 피워대는 파이프 담배, 여기까지는 셜록 홈즈와 흡사한 이미지다.

그러나 냉철한 면의 홈즈와는 달리 시간만 나면 연신 먹어대는 거구의 매그레 반장.

그의 범죄 수사 방법은 차라리 육탄전에 가까워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개도 안 물어갈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거나

이리저리 꼬아서 마지막 장을 펼치기 전엔 도무지 범인을 짐작할 수 없는 그런 추리소설을 즐겨온 나로선

이 책이 조금 밍밍하니 싱거웠던 건 사실이다.

초반부터 반장과 범인의 특성이나 상황을 판단하느라 지루하기도 했고.

하지만 범죄자를 체포해 득의에 가득찬 목소리로 미란다 원칙을 읊조리는 것이 오로지 목적일 것 같은 형사의

고정된 이미지 틀을 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매그레 반장에 매료되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75권 대장정에 나설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만약 아프리카 우림에서 비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되었다면,

심농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대처법은 없다.

그와 함께라면 난 비가 얼마나 오래 오든 상관 안 할 것이다." - 헤밍웨이 -

 

오직 소원인 겨울 없는 나라, 열대우림에 살아생전 내가 고립될 확률은 로또복권 당첨보다 더 어려울 것이고

이 깜찍한 75권의 책은 앞으로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아낌없는 사랑을 받게 될 거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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