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장날 쪽파 2천원어치를 샀는데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는다.
하긴 양념장에 한 뿌리.맑은국에 송송 썰어 반 뿌리...
이짓을 하고 있으니 당연하지.
오늘 보니 상태가 좋지 않다.
그래서 급하게 몽땅 처리할 방법을 나름 골터지게 연구했다.
광활한 인터넷 정보의 바다를 떠돌며 한 3분 정도?
쪽파를 다듬을 때마다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간절하다.
살아생전 특별히 쪽파 요리를 좋아하셔서가 아니라 매사 엽렵하셨던 어머님은
채소를 다듬는 데도 어찌나 공을 들이시는지 가느리댕댕한 실파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다.
서너 뿌리 다듬는 척 하다가 청심환 타령이나 하는 개차반 며느리 대신
쪽파 다듬기는 늘 어머님 몫이었다.
살면서 어머니가 가장 그리운 순간은 파 다듬을 때와 노각 껍질 벗길 때라면 서운해 하실까?
오늘 아침 창밖 풍경
기상청에 의하면 4월에 눈이 관측된 것은 1993년 4월 10일 이후 처음이란다.
기상관측 이래 서울에서 4월에 눈이 내린 것은 이번을 포함해 29번.
이런 숫자놀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 기억에도 4월의 눈은 참으로 오래 전 일이다.
진눈깨빈가 했더니 어느새 아기 주먹만해진 눈송이.
그대로 머리에 맞으면 구멍 뚫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게다가 연이어 모진 강풍까지.
며칠 전 보고 온 바람꽃이며 노루귀의 여리디 여린 꽃잎은 어찌 견디고 있을지...
이런 날은 개 죽사발 핥아 놓은 듯, 60촉 백열등 백 개쯤 갈아마신 듯 자체발광하는 꽃미남이
백미터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해도 단 한발짝도 움직이기 싫다.
하지만 이 고품격백수, 국가공인을 받는 그날을 위해 저 눈보라를 헤치며 출동했다.
보람차다.
어머님 생각에 매운 냄새에 눈물을 질질 흘리며 남아있던 쪽파를 전부 다듬었다.
그래도 너무 많은 것 같아 조금 덜어 냉장고 넣어두고.
오징어 대신 게맛살, 노랑 빨강 파프리카를 소금물에 살짝 데친 쪽파로 돌돌 감았다.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된다.
달군 팬에 기름 두루고 계란을 마구 휘저으며 볶다가 꼬드리한 밥을 넣고 살살 섞는다.
소금 콩알만큼, 참기름 네로 눈물만치 찔끔.
마지막으로 송송 썰어 놓은 쪽파를 휘릭~
특유의 알싸하고 매콤한 향을 버리고 계란의 비릿함은 잡은 쪽파.
살신성인이 따로 없다.
쌀뜨물과 멸치육수로 끓인 냉이 된장국과 계란쪽파 볶음밥
누르스름 잘 익은 쪽파김치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파, 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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