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산정호수에 도착했다.
억새축제를 앞두고 있는 추석 연휴라 등산로 입구는 산객들로 붐빈다.
멋진 풍경과 더불어 용담과 자주쓴풀 산구절초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품고 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물매화 한두 송이도.
어젯밤 남편에게 물매화를 찾아주면
꽃 한 송이당 십만원을 주겠노라 공약을 걸었다.
물론 빌공자 공약이다.
꼭 들어줬으면 하는 부탁을 나는 이런식으로 한다.
현상금이 탐나서라기보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꽃이길래
또 저리 허풍을 떠나 싶었는지 바싹 관심을 보인다.
친절한 진숙씨,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여줬다.
딱 있음직한 물웅덩이 주변을 이 잡듯 살폈으나
물매화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뭐 처음부터 기대는 안 하기로 했으니 서운할 것도 없다.
서운해 하지는 않겠지만 만난다면 무진장 기쁠 건 같다.
그때 실땅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십여 개체 피어있던 물매화가
등산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억새와 함께 잘려버렸다고.
그러니 애써 찾지 말라고.
억새밭을 오르다 우연히 만난 길경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단다.
현상금 날아가는 소리를 들은 남편, 나 돌아갈래 한다.
산정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오르자 용담과 산부추와 자주쓴풀이 지천이다.
물매화는 빠르게 잊혀졌다.
작살나무
쑥방망이
팔각정
실땅님~
산정호수
용담
산구절초
자주쓴풀
산부추
독기빠진 가을볕이라 하나 아직 그 서슬이 남아있다.
그늘 없는 땡볕 아래 능선길 걷기는 만만치 않다.
등산이라야 기껏 친구들과 막걸리통 들고
동네 뒷동산에나 살살 다니던 남편의 인내심은
삼각봉에 이르러서 바닥이 났다.
코앞에 정상이 보이는데 이제 그만 가자 한다.
실땅님 고명딸 보배양도 기진해 주저앉았다.
더위를 먹었는지 실땅님의 컨디션도 제로빵떡이다.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더 힘겨웠다.
특별히 가파르거나 위험한 코스 없이
무한대로 이어진 듯한 완만한 등산로가 오히려 더 피로하다.
가뭄을 피하지 못한 산길은 심하게 건조하다.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꽃구름처럼 흙먼지가 인다.
이런 산행 좋지 않다.
아무튼 한라산 만큼은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그때 만큼 지루했다.
남편과 나,스믈스믈 어둠이 스며드는 산길을
이혼 숙려기간의 부부처럼 아무 말 없이 땅만 보고 걸었다.
조금 먼저 내려와 문 닫은 식당 평상에 앉아 실땅님과 보배양을 기다렸다.
산에서 아홉 시간이나 머물었어.
남자가 애 낳았다는 말이라도 전하는 것처럼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남편이 말한다.
뭐 그까잇걸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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