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발목까지 차오른 제주도 푸른 바닷물이
마치 펄펄 끓는 물이라도 되는양
폴짝폴짝 뛰며 놀고 있던 여름 어느 날.
오베라는 남자가 어딘지 모르게 나와 오버랩되어
독서행위가 헷갈린다는 친구의 카톡문자가 날아들었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도플갱어까지 운운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종각의 한 대형서점에 들렸을 무렵엔
이미 한바탕 오베 열풍이 지나가고 난 뒤였다.
초로의 오베라는 남자는 그새 베스트셀러 대열에 물러나
출입구 가판대에 철지난 떨이상품처럼 드러누워 있었다.
까칠하고 냉소적이며 독설대마왕이었던
내 유년과 학창시절을 봐왔던 친구의 눈에는
저 오만인상을 쓰고 있는 괴팍한 노인 오베가 나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책을 읽으며 오베라는 남자와 한때 까칠진숙으로 불렸던 나의
같은 그림과 다른 그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불통의 대명사였던 오베가 어떻게 이웃과 소통하며 정을 나누기 시작했는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뒀는지 그가 추구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그런 것에는 정작 큰 관심이 일지 않는다.
그러던 중 나는 오베의 모습에서 전혀 엉뚱하게도
오백 년전 무덤 속 편지의 주인을 떠올렸다.
안동의 한 야산에서 발굴된 그 편지는 이미 많이 회자되었고
그 절절한 사연은 능소화라는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원이 아버지께.
당신은 언제나 검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도록 함께 살다가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 원이엄마
당신이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 오베라는 남자
변하지 않는 거라곤 단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시작과 끝이 한결같았고
오히려 잃고 빼앗긴 후에 더욱 사무쳤던 오백 년전 한 여인의 사무친 망부가와
아내를 따라 죽자고 기를 쓰는 오베라는 남자의 소리없는 절규가 자꾸 오버랩 된다.
이것이 나와 오베가 결정적으로 다른 그림이다.
내게 죽음불사의 사랑 유효기간이 지난 건 벌써 오래 전이다.
더 나아가 나는 이 세상에 더이상 사랑 따위는 없다고,
모래바람 부는 사막에 맨발로 서서 지상에서 사랑은 소멸되었다 라고 외치고 싶지만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고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한 말이 되지 않을까 참기로 했다.
정의와, 페어플레이와,근면한 노동과,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라 여기는
오베라는 남자에서 내 모습을 봤다는 건 설마 아니겠지?
혹시 그런 거라면 고맙게 받아들이겠다.
사랑까지도 짝퉁과 사이비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먼저 떠난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신을 삼는 아내와
그저 마땅히 그래야하는 것처럼 매일 아내의 무덤에 꽃을 바치는 오베라는 남자.
정말 기적같은 이야기다.
'내 마누라, 남편만 아니라면 불타는 사랑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늘 되어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