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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봉평시장

by 타박네 2016. 9. 6.

 

 

          가는 날이 그야말로 장날이자 메밀꽃 축제 기간이었죠.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혼잡스럽고 주차할 곳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운 좋게도 봉평도서관 앞에서 때마침 빠져나가는 차 한 대를 발견했어요.

               그 차주에게 축복을!

               이고 지고 다닐 수도 없는 집채만한 차를 해결하고 나자

               비로소 들썩한 시장 분위기가 피부에 와닿습니다.

               곧바로 할머니 메밀전병을 찾아갔습니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식당 데크에서는 수와진의 공연이 한창입니다.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로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줄 서 기다려야했죠.

               이러면 고민됩니다.

               머리 속에는 환장적이었던 맛의 기억이 또렷하게 살아있는데 할머니의 손의 온데간데 없고

               북새통인 식당에 날아다니는 접시 위 메밀전병은 어쩐지 생소해 보였으니까요.

               이런 날은 다 거기서 거기니 조금 한적한 곳으로 가보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봉평이 어디 쪼로로 갈 수 있는 옆동네라야 말이죠.

               그리고 미련 남기는 건 똥 싸고 뒤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한 일입니다.

               아주머니 손이든 아저씨 손이든 왔으니 주는 대로 먹고 가자 했습니다.            

              메밀전병과 메밀국수로 가득 찬 배나 꺼뜨리자고 시장 구경을 나섰는데요.

               우리 실땅님 올챙이국수에서 시선을 못 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수수부꾸미라면 따로 들어갈 자리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죠.

               미련과 음식은 남기는 거 아닙니다.

               버릴 건 버리고 먹을 건 먹어야죠.

              왜 올챙이국수야? 물으려는데 실땅님,

               거의 다 먹은 그릇 바닥에서 꼬리 달린 올챙이 한 마리를 건져냅니다.

               설명 들을 것도 없이 아! 곧바로 이해가 됩니다.

               참 단순합니다.

              수와진의 길거리 공연은 하루종일 계속될 모양입니다.

               하늘양이 씨디를 구입하자 노래하는 중간에 싸인도 해줍니다.

               작은 무대 바로 앞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배 부르면 흥도 더 나죠.

               부르는 노래마다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입맛에 꼭 맞는 음식처럼 착착 감깁니다.

               같은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는 비슷한가 봅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하고 따라 부르는 행인들이 많습니다.             

              강 건너편에 있는 메밀밭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얀 꽃밭에서 기념촬영을 해보고 싶었던 하늘양의 바람은 입장료와 비 때문에 좌절됐죠.

               메밀밭에 도착하자 후득 비가 떨어집니다.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의 종종걸음에 마음은 급한테

               메밀밭은 입장료를 구입해야 들어갈 수 있답니다.

               밭 중간중간 만들어 놓은 포토존은 포기하고 돌아섭니다.            

 

               본격적인 장구경이 시작됐습니다.

               사고 싶은 게 많은 실땅님과 하늘양은 지갑을 차고 두고 와 속이 탑니다.

               저는 이 목이버섯을 조금 샀어요.

               시장 가서 싱싱한 버섯을 보고 그냥 오는 법은 어지간해서 없습니다.

               버섯은 고기 대신 먹는 보양 식재료거든요.

               집에 쌀은 떨어져도 버섯 떨어지는 날은 없을 정도죠.

               각종 버섯과 채소에 이 생목이버섯을 더해 들기름으로 살살 볶아내면

               한끼로도 충분할 만큼 든든한 요리가 됩니다.                

              봉평시장에서 나오자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우리 실땅님, 장난감같은 핑크색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더니 슬그머니 심수봉 노래를 틀어줍니다.

               사랑밖에 난 몰라는 아주 오래 전 졸지에 애창곡이 된 노랩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죠.

               어차피 실려가는 일 밖에 없으므로 노느니 조느니 노래 한자락 쫘악 펼칩니다.

               노래를 불러본 게 언제적인지 목청이 감을 잡지 못하고 마른 논바닥처럼 쫙쫙 갈라집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또래 엄마들과 처음 노래방이란 데를 갔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때만 해도 노는 문화가 익숙치 않았던 터라 긴장한 얼굴이 그네들 눈에도 보였겠지요.

               제가 무슨 노래로 신고식을 할까 궁금답니다.

               지루한 가곡이나 건전가요로 그날의 분위기 테러리스트가 될 거라 지레 짐작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저도 다 생각하고 나간 자리였어요.

               제가 심수봉 카드를 꺼내 구성지게 불러제끼자 다들 기함을 하더군요.

               그날 이후 노래방 가는 일이 생길 때마다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심수봉 노래반주를 눌러줍니다.

               분위기 맞추려고 그랬을 뿐 내 애창곡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도 소용 없었어요.                        

             길은 시원하게 뚫렸고 차 안 노래방은 계속됩니다.

               하늘디제이양 휴대폰에 저장된 100여곡 넘는 노래들이 차례로 방출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목청 볼륨을 높였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실땅님의 애창곡 <중년>과 <해운대 연가>는 특별히 두 번씩 들려줍니다.

               매끈하게 노래 좀 할만하니 어느덧 눈에 익은 정다운 풍경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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