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시 비천골에 자리한 여행자 숙소 '비천을 담다'입니다.
프랑스자수 선생님인 연두의 정성어린 조식과
커피감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루돌프양의 아주 특별한 커피로 이미 유명하죠.
너른 마당을 환하게 밝혔다는 키 큰 은행나무 풍경은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움으로 남깁니다.
숙소 한켠의 식탁
시래기된장국과 전복 새우장,수육,과일샐러드 등으로 차려진 아침밥상입니다.
남의살 거부하는 저를 배려해 특별히 자연산 송이버섯장아찌를 내주었지만
사실 사이다맛 나는 배추김치가 더 감동적이었죠.
사진에는 빠졌습니다만.
루돌프언니라 불리는 숙소 바로 옆 커피 인트로 사장님의 스페셜티 커피와
화목난로에서 구운 고구마의 조합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호사가 바로 이런 것이지 싶습니다
돌아가는 길 차안에서 입 마를 때 먹으라며 연두가 챙겨준 자른 무 몇 토막.^^
지난 토요일 첫눈이 내렸습니다.
보통 첫눈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애매하게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단번에 확실하게 강렬하게 내렸죠.
비천골에서 군고구마와 함께 커피 두 잔을 연거푸 마시며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원대리 자작나무숲으로 향하는 걸음이 급해졌습니다.
출발하기 전 탐방로센터에 전화를 걸어 혹시 아이젠이 필요한 상황이냐고 물었습니다.
신뢰감이 가고 듣기에도 편안한 중저음 목소리에 친절하기까지한 남자분이 굳이 없어도 될 것 같다 하시더군요.
그 말도 맞지만 오르는 길의 대부분이 전날 내려 덜 녹은 눈으로 미끄러워 그다지 안전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있으면 더 좋을 상황이었죠.
입구에서 자작나무숲까지 한 바퀴 돌아 내려오자면 걸리는 시간이 대략 3시간,거리로는 7 km가 넘습니다.
가방 속에 아이젠 하나가 들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힘이 곱절 더 들 뻔 했죠.
오래 전 강언덕 위 애기무덤을 알고 있는,
어느 날 문득 아무 일 없이 그냥 전화하는 친구로부터
어제 저녁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냥에 재미가 들렸나 했죠.
뭐하냐 묻길래 밥 먹는 중이라 했습니다.
음성에 무언가 다급함이 느껴져 상관없다고 했지만
평소 예의바르기로 나라 안에서 으뜸 버금을 가릴만한 친구인지라
상대가 상관 없다고 말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게 의아했죠.
야, 너 그거 알아?
뭐?
나태주 시인이 우리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거.
그 풀꽃 시를 쓴 시인?
그렇다니까.
헉, 정말? 누가 그래?
그 순간 나는 갈대숲이고 친구는 비밀을 고해바치는 이발사였습니다.
뭐 전혀 기억에는 없습니다.
늘 떠들어대지만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좋은 추억보다 몹쓸 기억이 더 많습니다.
출석부 모서리로 정확히 두개골 중앙를 가격하던 선생님,
영어시간 질문하는 학생에게 그런 건 알아 뭐하냐,
대충 있다가 나중에 시집이나 잘 가면 되는 거 아니냐
비야냥 거리던 선생님은 정말 최악이었죠.
그런데 시인이라니요.
당시 나이를 가늠해보니 선생님 젊은 시절이었겠어요.
한시절 우리들 곁에 머물렀던,그랬다던
아름다운 분의 기억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덕에 그냥친구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지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