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야곰야곰이다.
조금만 먹어도 헛배가 부르거나 질려 몇 장 들추고는 이내 덮어버리니
머리맡의 책들은 한두 입 베어 먹고 던져둔 사과더미 같다.
책에 대한 식욕은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입맛 당기는 책들을 찾아보려 서점 안을 배회해본들,
그 많은 산해진미 앞에서도 딱히 동하는 게 없다.
자극적 제목이나 예쁜 표지그림에 짧은 눈맞춤을 하고는
야생화도감이나 프랑스자수책을 뒤적거리는 게 책쇼핑의 코스가 된 지 오래.
책에 대한 식욕이 저하되자 식탐이 늘었다.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
배고픔 현상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데 이는 한편 반갑고 한편 걱정스럽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
객사.
거리를 떠돌다 죽음.
어쩌다 이 말이 간절함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타박타박 걷다가 허위허위 걷다가,
기다렸다는 듯 한 올 바람에 홀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그렇게...
복권 대박당첨 대신 이 소원으로 갈아타볼까 깊이 고민 중.
어휘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한 대하소설들을 작가처럼 두세 번씩 읽었음에도
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정작 염병~말고는 떠오르는 말이 없는 것인지.
이윤기, 그리스에 길을 묻다,신화, 세상에 답하다/김원익
그리스에 길을 묻다/ 이윤기
말이 앞서면 진심이 가려지기 쉽고 말이 많아질수록 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불현듯 든 생각이다.
푸지게 먹은 나이가 마치 생의 성공으로 얻은 훈장인양
입만 열면 가르치려 덤비는 노인이 되지 않게 해 주소서.
조금씩 입을 봉하시고 작은 소리를 크게 듣도록 귀를 열어 주소서.
불현듯 든 생각의 꼬리에 매단 내 작은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