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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Book소리

글 헤는 밤

by 타박네 2018. 7. 2.

   사실상 '풀씨'는 해체되었다.

   시절인연을 다하고 시절이별을 맞이한 몇몇 그녀들은 자연스레 잊혀지는 듯 했다.

   얼마 전 마침표를 찍듯 단톡방에서 빠져나왔다.

   그것으로 한때 (아름다운)중독을 열망했던 나는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중독에서 해방되었다.

   인간의 언어보다 꽃들이 전하는 말들에 귀가 더 솔깃한 요즘이다.

    

   그저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며 모인 자리에 두 권의 책이 커피 안주처럼 올라왔다.

   젊은 그녀들은 여전하구나.

   부럽고 안타까웠다.

   외출가방에서 책과 돋보기안경이 사라진 건 오래 전 일이다.

   홀가분해진 그 빈구석에는 수다와 커피맛을 살릴 초콜렛이며 쿠키가 채워졌다.

   가끔 꽃들이 전하는 말보다 얕은 달콤함으로 포장된 인간의 언어가 더 솔깃할 때도 있다.

   가끔이 아니라... 종종인 것 같다.

   빌어먹을 양심!

  

   그날 밤, 시집을 꺼내 읽었다.

   시를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글밥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무작위로 골라 구입한 시집 열네 권.

   다시 고백컨대 시의 다양성보다 깔별 맞춤에 의미를 뒀다.

   그 중 한 권,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는 문학동네 시인선 100호 기념 티저시집이다.

   이것도 주문하고서야 알았다.

   안경을 쓰고도 걸핏하면 사방으로 달아는 글자들을 불러들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직까지는 수면제 대용으로 취침 전 시 두세 편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비가 왔다 낮잠을 자고 꿈에서 누군가와 싸웠다

   짐승의 털이라도 가진다면 웅덩이에 몸이라도 던지겠지만

   젖은 베개를 털어 말리고 눅눅한 옷가지에 볼을 부비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오병량 '편지의 공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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