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반인 건 매한가지지만 다른 게 있다면
지난 해와 비교도 안 되게 열심이란 거죠.
덕분에 요령도 많이 늘었습니다.
골목을 오가며 관심을 보이시는 어르신 한 분을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거들떠 안 보는 꼬라지 우스운 밭이
이제 집보다 더 편안한 공간이 됐습니다.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날 새면 달려가 밭고랑에 코를 박는 저를
남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답니다.
남편의 눈에는 제 하는 양이 미련스럽기 그지 없는 데다
가끔은 자학처럼 보여 불편했었던가 봅니다.
그 문제로 크게 다툰 적도 있죠.
그러게요...
텃밭일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저 역시 궁금합니다.
농사짓는 지인들이 많아 신선한 채소라면 얼마든지 얻어 먹을 수 있죠.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꽃소풍도 가구요.
집 밖만 나서면 절로 자라는 풀꽃들이 지천인 동네입니다.
싹 트고 꽃 피고 지는 풍경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적당히 하라는 남편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요즘 사는 낙이 이거 밖에 없어서 그런다 왜.
무심코 내뱉은 말입니다.
아무래도 늙어가는 과정 중에 아주 고약한 시간길을 지나고 있나 봅니다.
그제부터 꽃망울이 한두 개씩 톡톡 터집니다.
얼쑤~
한 무더기 초석잠 꽃이 피니 밭 한구석이 제법 볼품있습니다.
도대체 몇 봉지를 샀는지 모릅니다.
씨앗 파는 가게만 보면 들어가 사고야 말았으니까요.
씨 뿌린 위에 또 뿌리고 또 뿌리기를 거듭했죠.
그리고는 풀들보다 먼저 자라길 기도했습니다.
뿌린 씨앗의 양에 비하면 엉성하기 그지없습니다.
풋고추 여남은 개 따 된장 찍어 먹고
두어 개씩 열리는 오이로는 불린 미역과 함께 냉국 만들어 먹습니다.
멸치육수에 굳이 치댈 것도 없이 보드라운 아욱을 듬뿍 넣고 된장국 한 솥 끓여 놨죠.
수확시기가 조금 늦어져 질깃한 열무를 몽땅 뽑았습니다.
밀가루풀 쒀 대충 버무려 놓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합니다.
하나하나 만져보고 됐다 싶은 완두콩만 골라 작은 봉다리 하나 되게 땄습니다.
첫 수확이고 해서 평상 어르신들께 자랑삼아 드렸죠.
아직 남은 게 많으니 연둣빛 완두콩 콩콩 박힌 뽀얀 쌀밥은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