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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드디어 뉴욕

by 타박네 2017. 12. 7.

      퀸시마켓에서 만족스런 점심을 먹은 뒤 

       주 의사당과 하버드,MIT 대학을 둘러봤습니다.

       크게 관심이 가지 않으니 사진도 대충 보는 것도 처삼촌 벌초 식이었죠.

       더러는 어깨통증을 핑계삼아 차에 남아있기도 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일정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차라리 걸핏하면 눈에 띄는 스타벅스로 들어가

       느긋하게 뜨거운 커피나 한 잔 마셨으면 싶었습니다.

       불편하고 조금은 두려운 낯선 환경과 언어 속에서 찾아낸

       익숙한 향기는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럴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집 떠나 엿새쯤 되니

       제 주제도 모르고 거만한 우리 동네 길냥이가,

       눈 감고도 뜬 것처럼 훤한 골목이,

       늘 같은 인사를 주고 받는 이웃들이,

       별일 없는 게 별일인 권태로운 일상이 왈칵 그리워져

       팔자와 어울리지도 않는 여행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하늘길을 생각하니 또 눈앞이 캄캄했죠.

      불법체류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십여 년도 더 된 어느 날,

       얼떨결에 도봉산 무슨 봉우리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한창 산독이 올라 겁 없던 동네 언니를 따라 나선 건데요.

       징징거리면 다음에 안 데리고 갈까봐 정말이지 죽을 힘을 다해 정상까진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너무 무서워 눈물조차 안 나왔습니다.

       올라온 길로 되돌아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천길 낭떠러지처럼 보이는 바위 사이로 내려가는 방법 말고는 없다더군요.

       제 평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그야말로 기가 탁 막힐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가 갑 중의 갑이었던 것 같습니다.

      

       딱 그 심정이었던 거죠.

       어쨌든 그날 하산은 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눈만 감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악몽에 시달렸어요.

       끔찍했습니다.

       가뜩이나 악몽이라면 장르별로 싸그리 꿔대는 판국이었죠.

       공포의 도봉산 한 편 더 추가하지 않아도 충분했는데 말입니다.

       또 어찌됐든 장장 14시간 비행끝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제 이불 속으로 돌아오긴 했습니다.

       여전히 투병 중이구요.

       늘 실실 웃고 다니며 농짓거리를 일삼으니 저거 나이롱 환자 아냐?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소소한 만성 질병들로 평생 단련된 터라 그 부분에서 만큼은 제가 참 긍정적입니다.

       삶의 질이 좀 구려틱하고 불편해서 그렇지 이따위로 죽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게 알거든요.

      

       그리고 뉴욕.

       동생을 만났습니다.

       언니,왜 이렇게 쪼그라들었어?

       묻는 건지 따지는 건지 탄식하는 건지... 반갑다는 인사가 살짝 거슬립니다.

       십 년만에 너 한 번 보려다가 십 년은 폭삭 늙었다 왜?

       현실 자매의 상봉 인사는 이렇습니다.       

     함께 하던 일행들과 헤어져 동생부부와 하루를 보냈습니다.

      뉴욕에서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곳 있으면 얘기하랍니다.

      네 얼굴 봤으니 됐다는 닭살 돋는 대답을 했지만 무시당했죠.

      길이 어딘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느냐는 겁니다.

      이날은 가이드 대신 동생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1904년 뉴욕 지하철이 개통되었다니 100년이 넘었군요.

      작은 타일 조각을 붙여 만든 벽화와 이정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낡은 나무의자, 칠이 벗겨져 너덜대는 벽,퀴퀴한 냄새만으로도

      오랜 세월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숱한 영화의 배경이었고 여전히 각종 영화나 드라마의 무대로 각광받는다는 센트럴 파크.

      천천히 산책을 하면 좋았겠지만 기운도 없고 시간도 부족해서 마차를 타고 돌아봤습니다.

      동물학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진 않지만 우선 말 사정보다 제 사정이 급하니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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