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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독자매

정신없었던 하루

by 타박네 2010. 7. 24.

 

연천 한얼다도교육농장에서 예절교육이 있는 날.

교육이 대략 오후 5시쯤 끝나고

저녁 7시엔 전곡에서 팝페라 공연을 봐야하니

집에 왔다갔다 할 것 없이 그 사이 남는 시간을

어디서,누구와, 알차고 신나게 보낼 것인가

생각이란 것도 좀 하고 집을 나섰다.

'늘 그렇지만' 기다릴 때는 오지 않는 게 버스와 사랑이다.

 

팔목이 떨어져라 부채질을 하며 기다려도

연천행 직행버스는 함흥차사다.

출퇴근 시간 외에는 정해진 시간 없이 제멋대로다 보니 

어느 날엔가는 30분 가까이 기다린 적도 있다.

마음이 조급해지자

한 번에 편히 가자는 생각을 접고 완행버스에 올랐다.

'늘 그렇듯'

이럴 때 꼭 적용되는 머피의 법칙!

차 바퀴가 구르자마자 저 멀리 다가오는 팥죽색 3300번 직행버스. 헐!

내가 탄 완행버스를 지나쳐 멀어져가는 직행버스의 꽁무니를

망연하게 바라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 뭐 좋다.

전곡에서 한 번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아직 그다지 늦은 건 아니니까.

그런데 뭐가 또 이상하다. 스멀스멀 불길한 느낌이 밀려든다.

앗! 공연 티켓을 두고 왔다.

이런 된장.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찍은 연천 들판.

 

마침 기차 시간이 맞아 전곡역에서 경원선 열차를 탔다.

정말 오랜만이다.

연천까지는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

갈만하면 서는 버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쾌적한 승차감!

느긋하게 초록 들판과 비구름을 휘감고 있는 먼 산을 바라보니

숨 쉬는 게 편안해 지며 좀 전 까지의 왕짜증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이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나 보다.

직행버스를 타고 곧장 연천까지 갔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즐거움.

연천역 급수탑.

 

수없이 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렸지만

한 번도 급수탑을 유심히 본 적은 없다. 

새벽까지 내린  비로 급수탑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 덩굴이

그 어느 때 보다 싱그러워 보인다.

중세의 고성 한 부분이 연상되는 고풍스런 분위기도 그렇고

역사적 의미와 가치도 있어

작품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진사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다.

 

연천역 급수탑

등록문화제 제 45호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시절 물을 공급하기 위해 쓰였던 시설이다.

6.25 전쟁 당시 총탄 흔적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역 앞 빵집 벤치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파롱.

마음 속에서 무지개가 뜬다.

연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느티나무 가로수 길.

가지가 서로 맞닿아 터널을 이루는데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잎들로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다.

소읍이다 보니 길거리에 차가 없어 한적하다.

길 저편에서 날아온 팅커벨처럼 예쁘다. 파롱!

 

 

파롱과 한얼교육농장 가는 길.

( 군남면과 왕징면을 잇는 북삼교)

연이어 내린 비로 임진강이 벌건 황톳물로 넘칠 듯하다.

한얼다도 교육농장

오늘 교육에 대한 사전 정보와 이해 부족으로

맨발로 수업을 받는 무식한 짓을 하고 말았다.

특히 손, 발 가짐을 조신하게 하라 강조하실 땐

들어 갈 쥐구멍이 어디 없을까 찾고 싶을 정도였다.

배웅해 주는 가몬팁.

내가 버스에 오르고 차가 떠나도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 준다.

늘 그렇다.

지친 다리를 끌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만은 행복으로 벅찬 이유가

이런 사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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