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자 그림(세밀화)
사람의 눈을 통해 들어가 기억이라는 저장고를 거쳐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는 세밀화는
카메라라는 기계 안에서 한 장의 그림으로 나타나는 사진보다 훨씬 정감이 있다.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 들녘
이 책을 들꽃차님 블방에서 처음 봤던가.
한참 전의 일이라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긴 당장 아침에 뭘 먹었냐고 물어봐도 즉시 대답 못하는 게 지금 내 현실이다.
날마다 뇌세포 일억삼천개씩이 죽어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쨌든, 보는 순간 저거다! 하고 바로 구입은 했다.
내겐 '똥폼나게 옷 잘 입는 101가지 방법' 이나 ' 복권 대박당첨 되는 명당자리' 따위의
정보보다 훨씬 더 실속있고 요긴할 것이므로.
사람이든 생활이든 틀에 박힌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농운동가' 변현단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씨익~ 웃음이 난다. 찌찌뽕!
텃밭 농사는 커녕 송곳 하나 꽂아볼 손바닥만한 땅뙈기조차 없는 형편에
나처럼 풀만 먹고 사는 사람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채소의 구입을 마트나 시장에 전적으로 의지하다 보니 배추가 금치니,
상추가 금추니 할 때마다 남편의 박봉 앞에 괜스레 미안해지곤 하는 것도 그 중 하나.
(내게 일용할 풀들을 아낌없이 협찬해 주시는 꿀보살님, 안계장님, 가몬팁, 그 외 할매친구분들!
가족 삼대에 복이 넘치시길~)
그래서 내가 눈을 돌린 건 저 들과 산.
고사리나 취, 두릅 같은 누구나 알고 있고 귀한 대접 받는 나물이야 내가 넘볼 처지는 아니고
산길 발치에 채이거나 묵은 밭에 지천인 풀들을 먹어 보기로 한 게 몇 해 전부터다.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저 들과 산의 '내 농장화' '내 텃밭화' 운동을
말로 하려니 구차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 눈물겹기도 하다.
지금은 잡초라 부르지만 이 풀들이 내겐 낯설지 않다.
어릴적, 먼산에 희끗한 잔설이 남아있던 아주 이른 봄 냉이를 시작으로
들에 나는 대부분의 풀들이 나물로 밥상에 올랐었다.
깜부기, 삘기 , 싱아같은 풀들은 놀다가 심심할 때 뜯어 먹는 간식이었고.
딱히 누가 이건 먹어도 되는 것, 독성이 있는 것 하고 알려준 적도 없다.
그저 씹어 보다가 달면 삼키는 거고 쓰거나 비릿하면 뱉으면 되니까.
그 무식한 짓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잡초에 관한 서적이나 정보가 많이 나와 있어 아무 풀이나 뜯어 먹다
'비명횡사' 내지는 '장렬히 전사' 했다는
쪽팔리는 죽음을 지인들에 알려야 하는 불미스런 사태의 발생 확률이 낮아진 것.
풀 삶는 냄새에 기관지가 부어올라 황천행 직행열차를 탈 뻔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하필이면 알레르기 천식을 앓고 있었을 때였고.
내겐 더없이 맛있기만 하고 보기만 해도 행복에 겨운 잡초들이
언젠가부터 불구대천의 원수, 눈엣가시, 천덕꾸러기로 멸시받고 있는 오늘날,
이 책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는 그 오명을 벗기면서
농작물과 잡초가 공생할 수 있는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 수록된 정보대로라면 거의 못 먹는 게 없을 정도다.
하지만 식욕을 자극하지 않는 풀들이 대부분이란 거.
다행인줄 알아, 이거뜨라! 아니었음 내 손에 벌써 다 죽었어.
작년에 채취해 아껴가며 먹는 망촛대나물과 질경이나물.
흔히 계란꽃이라고 부르는 개망초.
묵은 밭에 어김없 지천으로 피어있거나 길가 밭두렁등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정말 흔한 꽃이다.
꽃이 피기 전 잎을 뜯어다 살짝 데쳐 시금치처럼 참기름 두루고 바로 무쳐 먹어도 정말 맛있다.
마른 망촛대나물은 미지근한 물에 반나절쯤 담궜다가 그 물 채로
뭉근하게 다시 한 번 삶아낸다.
질경이
이것도 살짝 데쳐서 바싹 말려 두었다가 다른 묵나물과 마찬가지로 한 번 더 삶아 낸다.
누가 꽃등심 한우를 가져와 바꿔 먹자 해도 단칼에 거절할 망촛대나물과 질경이나물.
집간장, 들기름, 파,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볶았다.
이걸 본 피오나 턱 빠지는 소리로 "이 산더미 같은 풀무덤은 뭐야?" 한다.
뭐긴 뭐야. 니 엄마 보약이지.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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