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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Book소리

내 젊은 날의 숲

by 타박네 2011. 1. 5.

 

 

 새해 벽두 이책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여기저기 살짝 다리만 걸치고 있던 각종 교육도 끝나고 폭설과 한파로 길까지 미끄러워

자연스레 가택구금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국가공인 고품격 백수.

이럴 때 시간 죽이기로는 바느질과 독서만한 게 없다.

물론 이 짓도 누가 시켜서 한다면 눈물나게 서러운 노동이 되는 건 순식간의 일일 테지만.

 

얼마전 지인과 서점엘 들렸다가 제목에 '' 이라는 글자 하나가

유독 마음에 파고 들기에 사가지고 온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

 

책을 보며 감동적이거나 중요하다 싶은 구절, 또는 어려운 낱말이 나오면 표시를 하며 읽는 습관이 있다.

다 읽고 난 뒤 사전 찾기를 할 때나 다시 한 번 주욱 훑어볼 때 무척 편리하다.

읽은 책들 중에 유독 김훈의 작품에 다닥다닥 많이 붙여 놓은 표시들.

그만큼 공들여 읽는다는,마음을 움직인 글들이 많다는 뜻일거다.

 

 

 

 

 

노랑어리연꽃이 노랑머리연꽃으로 잘못 인쇄되었다.

심마니 산삼 발견한, 땅꾼이 백사 잡은 듯 의기양양해 이 부분도 일단 접착식 메모지로 꾹~ 표시해 두고.^^

뭐 어째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사진은 꽃과 나무의 생명의 표정과 질감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한데,

그 까닭은 사진의 사실성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적 기능 때문에 오히려 생명의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며,

생명의 사실를 그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의 몸을 통과해나온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80p

 

풀을 들여다보면서,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식물들의 시간을 나는 느꼈다.

색깔들이 물안개로 피어나는시간이었다. 119p

 

가끔은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눈이 아프도록 꽃 한송이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그 꽃이 피어있는 자리에서 해가 뜨고 지며 드리워질 산 그림자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리하여 청량한 새벽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던 늦가을 어느 아침처럼

오뉴월 엿가락마냥 늘어졌던 영혼이 팽팽하게 깨어나

그 꽃 한송이와 교감 하는 것,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것.

내겐 꼭 무슨 꽃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도라지꽃은 흐린 날 물안개 속에서 쟁쟁쟁 소리가 날 듯한데,

패랭이꽃은 햇빛 속에서 쟁쟁쟁 소리가 난다.  197p

 

세밀화는 개별적 생명의 현재성을 그리는 일이지.

그 안에 종족의 일반성이 들어 있거든.  203p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죽어 있는데,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 주고

나이테의 바깥층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죽는 동시에 살아난다.

나무의 삶과 나무의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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