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펜시아 리조트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양떼 목장에 가기 전 잔깐 알펜시아 리조트에 들려 점심을 먹고
이국적인 건물들을 감상하며 산책을 한 뒤
놀이기구인 알파인 코스터를 타보기로 했다.
전망대가 있는 야트막한 산 정상까지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내려올 땐 바로 옆에 설치된 두 줄 레일을 타고 내려오기.
이 리프트가 장난이 아니다.
스릴을 즐길 만큼 살짝 오금이 저릴 정도가 아니라 아주 공포에 질릴 정도.
뭐,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말이다.
올라타는 순간 곧바로 후회했으나 이미 내 두 발은 허공에 동동 떠버렸고
슬쩍 옆을 보니 피오나는 기절 직전 상태.
전망대에서 후덜덜 떨리는 심장과 다리는 겨우 진정시켰지만
내려갈 일이 태산이다.
리프트는 맨정신으론 두 번 다시 못탈 일이고
두 줄로 된 레일을 미니자동차를 타고 내려가는 건 더 심하다.
저절로 가는 것도,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으며 살살 굴려가는 것도 아닌
양팔 옆에 장착된 스틱을 밀고 당기며 오로지 혼자 운전해 내려가야 한다.
앓느니 죽겠다.
순서를 기다리는 줄에서 빠져나와 뒤로 가고 또 뒤로 가기를 수 차례.
체면이고 나발이고 풀숲을 헤치고 걸어 내려갈 수만 있으면
그렇게라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리프트 아니면 레일.
급기야 피오나는 도저히 그 어떤 것도 안 타겠노라
눈물을 질금거리기에 이르렀고
나는 혹시나 있을 지 모를 길을 찾겠노라 진상을 떨고,
그 가관을 눈앞에서 지켜보다가
참을 인 한계를 넘어선 남편의 얼굴은 굳어가고.
일단 우리는 이미 극한의 공포를 맛본 리프트를 버리고
레일로 내려가기로 합의는 봤다.
하지만 이번엔 두 사람까지만 함께 탈 수 있는 기구에
누가 누구와 함께 탈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했다.
죽어도 혼자는 못탄다고 팽팽하게 맞서던 피오나와 나.
어쩌랴.
딸을 살려야지.ㅠ
제 아빠 품에 안겨서도 저승가는 기차라도 탄 듯한 얼굴을 한 피오나는
남편과 함께 한순간 쌩~하니 내려가 버리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난 이제껏 내가 넘어온 온갖 죽을 고비나 떠올릴 수 밖에.
뭐든 첫고비가 중요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곤두박질 칠듯한 급경사 한고비 지나고 나니
슬슬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레일 옆으로 꽃도 보이기 시작하고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도 상쾌하다.
쉬폰 원피스자락이 뒤집어 지지 않을까 걱정할 여유도 생긴다.
그러더니 어느샌가 꿈틀꿈틀,일렁일렁 거리는 질주본능.
비록 지금은 쪼그라들었지만 이래뵈도 왕년엔 내가 자전거 폭주족아니었던가.
에라잇! 달려보자.
가볍게 날 버리고 자기들 끼리만 내려간 죄책감에다
평소 조그만 일에도 오도방정을 떠는 내 성질을 익히 아는 울냥반과 피오나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필시 중간에 차를 버리고 내렸을 거라며
오만 걱정을 다 하고 있었다 한다.
그 순간 내가
얏호! 외치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쏜살같이 달려 내려온 거다.흠하하~
양떼목장(대관령) 오르는 길가에 핀 해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