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감자가 나왔다.
가물어 그런지 알은 잘지만 그 어느 해보다 포슬하니 맛나다.
감자를 보면 꼭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날궂이 하는 미친년모냥 히죽히죽 웃게 된다.
제목이나 글쓴이는 까맣게 잊은 오래 전 읽은 책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글쓴이가 사는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쐬주나 봉다리과자 하드 이외에도
더러 제철 채소며 과일을 받아 팔기도 했단다.
그날은 가게 앞 마당에 감자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고
감자 더미 주위로 아저씨 아줌마 서넛이 쪼그리고 앉아
알이 굵네 자네 품평회가 열리고 있었다던가?
하필이면 새댁이던 글쓴이 눈에 띈 감자알 보다 더 실한 어떤 아저씨의 사타구니.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건만 저 홀로 당황한 이 새댁,
황급히 민망한 시선을 거두며 얼떨결에 내뱉은 말이
" 아저씨. 붕알 한 근만 주세요." 였다나.
그 날 이후 한동안 동네 사람들은 새댁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단다.
실제 이야기다.
감자 맛있게 삶는 방법, 모르는 새댁들을 위해~
예전엔 껍질을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 벗겼기 때문에
집집마다 반 토막, 아니 삼분의일 토막난 몽당 숟가락 서너 개쯤은 있었다.
어쩌다 몰래 칼을 들고 나와 슥슥 깍고 앉았을라 치면
감자 살 한 점도 귀히 여긴 어르신들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게을러 못 사는 건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 둥, 이승에서 버린 음식 저승에서 주워 먹고 산다는 둥.
귀에 못따까리가 앉을 정도였다.
시절이 좋아 감자 깍는 전용칼도 있고 살을 반이나 넘게 베어 버린단들 잔소리하는 어른도 안 계신다.
게다가 주방에 알짱거리는 모습만으로도 감격스러워하기에 이른 울냥반. ^^
짧은 사설이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감자를 삶아 보자.
내 멋 대로 껍질을 벗긴 감자를 좀 도톰한 남비에 담고 감자가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여기에 굵은 소금 조금, 뉴슈가를 쥐어짜낸 네로 눈물 만큼 넣는다.
인체에 유해하니 무해하니 한동안 갑론을박한 걸로 알지만 고향의 어머니 손맛이 그립다면
이것저것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약간의 백색가루는 허용하자.
정신 건강엔 더 없이 좋다.
물기가 거의 없을 때 젓가락으로 찔러 봐서 내 힘 안 들이고도 푹 들어가면
뚜껑를 열어 놓은 상태에서 남비를 앞뒤, 좌우로 살살 흔들어 주며 남은 수분을 날려 버린다.
지난 밤 술이 떡이 되어 귀가한 남편 생각하며 살기가 뻗친 기운으로 흔들면 곤란하다.
다 부서져 버리니까.
얼마 전 감자를 쪄 놨으니 먹으러 오라는 친구댁의 전화를 받고
1.4후퇴 때 헤어졌다 다시 찾은 혈육인양 한시도 손에서 떼어 놓지 않는 지모콘(티비 리모콘)씨를
냅따 던져 버리고는 바람을 가르며 달려나간 울냥반.
어찌된 일인지 금새 돌아 왔다.
의아해 하는 내 앞에 쑥 내민 따끈한 감자 두 알.
너무 맛있어서 나 주려고 먹다 말고 달려 왔다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이고 싶은 마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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