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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천국

도둑들

by 타박네 2012. 8. 30.

 

 

 

내가 문화의 불모지로 되돌아 온 뒤 영화관 팝콘 냄새 맡아 본 게 한 일억 년 쯤 되었다 싶은 그 사이

이 <도둑들>이 천만을 넘는 관객들의 지갑을 털었다나 어쨌다나.

나의 영화 선택 방식은 아주 주관적이며 단순한 것이어서 작품성, 예술성, 흥행성 이런 거 개무시 하고

첫 째,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가,

둘 째, 관람료 9천원과 저울질 했을 때 더 무거운가,

달랑 이 두 가지 뿐이다.

그런 면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만큼 좋아하는 배우들로 만찬을 연 이 <도둑들>은

기본 50점 이상 먹고 들어가는 거다.

그럴리 없겠지만 설령 그들이 교과서 읽듯 발연기를 하더라도

억지춘향 헛헛한 웃음만 나오는 스토리라 해도

헐리웃 블록버스터급 영화만 영화로 치는 문화사대주의자들의 눈에

따꽁따꽁 골목에서 장난감 총질하는 수준이라고 썩소를 날릴 액션씬으로

영화의 절반을 버무려 놓았다 해도 말이다.

 

 

그럴싸하게 똥폼나는 한중연합 도둑들의 목표물은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이천만달러에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

실제 삶 속에서도 의리 빼면 곧바로 쓰러져버릴 듯한 김윤석의 카리스마,

타짜2라 해도 어색치 않을 여전한 팜므파탈 금고털이 김혜수,

무엇보다 줄타기 전문 도둑인 전지현의 매력과 존재감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게다가 촌부에서부터 부잣집 마나님, 사기꾼까지

입혀 놓으면 척척 맞아떨어지는 팔색조 김해숙의 연기엔 존경심이...

으아! 헌데 영화 중간쯤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우리 이쁜 수현이.

내 너를 보자고 기꺼이 새벽밥 지어 먹고는 턱별시까지 그 먼 길을 달려 갔구만.ㅠ

 

제 값 치른 사과 보다 훔쳐 먹는 사과가 더 맛나다던가.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사과 한 알을 훔쳐 먹은 이후 세상엔 숱한 도둑들이 있었고 현존하고 있다.

 

굶주림에 빵 한 조각을 훔치고는 19년 동안 옥살이를 한 레 미제라블의 가련한 도둑 장발장,

말 못하는 짐승이나 훔쳐다 파는 한심한 개도둑,

큰 수술을 앞두고 입원했을 때 입원실 서랍 뒤져 코 푼 휴지만 불룩하게 든 내 지갑 훔쳐간 찌질잡도둑.

그래 뭐,  인생이 고단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도둑이라도 너무 없어 보이는 거 아냐?

적어도 무언가를 훔치려면 조선 3대 의적 장길산,홍길동,임꺽정처럼

'부정타파' '민생구휼' 거창한 명분이라도 내세워 보든가.

물 건너 로빈후드도 멋지잖아.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줬다는 이유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쇠사슬에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도 있고.

 

사람의 마음 훔쳐 제 잇속을 채우고 가치 없게 만드는 도둑,

으아...천벌 한 잔 쏘고 싶네.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은 것은 결국 싸구려로 전락하게 마련.

갖고자 하는 것에 간절함이 있다면 차라리 러시안 룰렛처럼 목숨이라도 걸 일이다.

 

훔치다.

남의 것을 몰래 가져다 제것으로 만들다.

 

도둑들, 저들이 훔치고자 한 게 오직 희대의 보석 '태양의 눈물'이었을까.

내 눈엔 그저 사랑하는 이의 마음 한 자락 훔치자고 저 지랄발광을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금괴털이에 성공하고도 도망 다닐 때 심정은 뭣같고 처절하게 외롭다지 않던가,마카오박이.

언제나 문제는 지랄같은 외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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