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꽃
자주꿩의다리
산앵도나무
독활
꽃며느리밥풀
여로
영아자
돌양지꽃
누리장나무
바위채송화
표범폭포
사는 일이 그렇듯 뭐든 계획했다고 그대로 착착 진행되지는 않는다.
고대산, 3코스로 올라가 1코스로 내려왔다.
음성 변조하고 검은 띠로 눈 가린 사람들 말처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며칠 전 3코스 초입 낙우송 군락 근처에서
노랑망태버섯을 보고 오셨다는 회장님 말씀을 듣고
가벼운 산책이나 하며 그 녀석이 피어나는 모습이나 지켜보자 했는데
노랑망태버섯은 커녕 나무 우거진 숲속엔 흔한 꽃조차 귀하다.
눈 부릅뜨니 비로소 기생여뀌와 큰도둑놈의갈고리, 멸가치들이 보인다.
확대경 들이대고 겨자씨만한 꽃들의
앞태 뒷태를 살피며 희롱하기도 하고
계곡 옆 너럭바위에 앉아 부질 없고 덧 없는 오욕칠정에
애면글면 하는 나를 마주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더니,
노닥거리는 사이 그새 두어 시간이 흐르고 그대로 돌아오기 아쉬워
계곡을 타고 오르며 이리저리 쏘다니는 사이
점심시간도 훌쩍 넘어버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산 정상 부근에 피었을 동자꽃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가 보자 하고.
지난 비에 꽃잎을 다친 동자꽃 한 송이,
등산객 발치에 채여 피로해 보이는 자주꿩의다리 한 무더기.
이것 만으로도 나는 꿈에 님 본 듯 눈물겹게 반갑다.
2코스 어딘가에 굽이굽이 산 능선을 배경으로
자주꿩의다리가 환상을 넘어 환장적이라지만 깔끔하게 단념하고
조금 무난한 1코스로 하산을 결정했다.
쓰잘데기 없이 큰 눈에 숲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드는 어둠이 보여
왈칵 무섬증이 들기도 했지만
잦은 비로 바위와 길이 미끄러워 하산길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두 다리가 바쁜 마음 따위는 개무시하고
어깃장을 부릴 무렵 나타난 멧돼지 흔적들.
파헤쳐 놓은 상태가 방금 전인 듯 보인다.
시린 계곡 물에 손 담그며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
말갛게 웃던 게 언제였던가.
멧돼지 흔적에 놀란 내 머리 속 회로들이
얼크러설크러지면서 그 기억은 실종 되었고
위험을 감지한 심장은 두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틱을 탁탁 두드리며 앞서 내려가는 산언니는 힘이 되지 않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눈에 띄는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슬그머니 주워들었다.
흘깃 돌아보던 산언니가 산신령 같은 내 모습을 보더니
까르르 웃는다.
웃음 소리엔 조롱이 들어 있다.
그 썩은 나무 막대기로 멧돼지와 맞서 싸우겠다고?
냅둬요. 없는 거 보다 나으니까.
나타나면 살살 달래 보낼 생각을 해야지.
하이고, 그러셔요? 갸가 말귀를 알아먹는답니까?
안 그럼 어쩔 건데?
짝대기라도 휘둘러 보거나 나무에 매달려 보거나.
주거니 받거니 말장난 하는 사이
화사한 꽃으로 뒤덮힌 누리장 나무가 새하얀 산꿩의다리가 보인다.
꽃에 홀려 걸음을 멈추니 산언니가 또 비아냥거린다.
멧돼지 무섭다고 호들갑 떨던 인간이 누구더라...
까짓거,멧돼지 출몰하면 대화와 협상은 언니가 알아서 할 테고...
바스라질듯 쥐고 있던 썩은 나뭇가지를 훽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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