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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와 풍경

고대산

by 타박네 2013. 8. 1.

 

 

 동자꽃

 

 자주꿩의다리

 산앵도나무

독활

 꽃며느리밥풀

 

여로

 

 영아자

 

돌양지꽃

 

 누리장나무

 

 바위채송화

 

 

 표범폭포

 

 

사는 일이 그렇듯 뭐든 계획했다고 그대로 착착 진행되지는 않는다.

 

고대산, 3코스로 올라가 1코스로 내려왔다.

음성 변조하고 검은 띠로 눈 가린 사람들 말처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며칠 전 3코스 초입 낙우송 군락 근처에서

노랑망태버섯을 보고 오셨다는 회장님 말씀을 듣고

가벼운 산책이나 하며 그 녀석이 피어나는 모습이나 지켜보자 했는데

노랑망태버섯은 커녕 나무 우거진 숲속엔 흔한 꽃조차 귀하다.

눈 부릅뜨니 비로소 기생여뀌와 큰도둑놈의갈고리, 멸가치들이 보인다.

확대경 들이대고 겨자씨만한 꽃들의

앞태 뒷태를 살피며 희롱하기도 하고

계곡 옆 너럭바위에 앉아 부질 없고 덧 없는 오욕칠정에

애면글면 하는 나를 마주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더니,

노닥거리는 사이 그새 두어 시간이 흐르고 그대로 돌아오기 아쉬워

계곡을 타고 오르며 이리저리 쏘다니는 사이

점심시간도 훌쩍 넘어버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산 정상 부근에 피었을 동자꽃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가 보자 하고.

 

지난 비에 꽃잎을 다친 동자꽃 한 송이,

등산객 발치에 채여 피로해 보이는 자주꿩의다리 한 무더기.

이것 만으로도 나는 꿈에 님 본 듯 눈물겹게 반갑다.

 

2코스 어딘가에 굽이굽이 산 능선을 배경으로

자주꿩의다리가 환상을 넘어 환장적이라지만 깔끔하게 단념하고

조금 무난한 1코스로 하산을 결정했다.

쓰잘데기 없이 큰 눈에 숲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드는 어둠이 보여

왈칵 무섬증이 들기도 했지만

잦은 비로 바위와 길이 미끄러워 하산길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두 다리가 바쁜 마음 따위는 개무시하고 

어깃장을 부릴 무렵 나타난 멧돼지 흔적들.

파헤쳐 놓은 상태가 방금 전인 듯 보인다.

시린 계곡 물에 손 담그며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

말갛게 웃던 게 언제였던가.

멧돼지 흔적에 놀란 내 머리 속 회로들이

얼크러설크러지면서 그 기억은 실종 되었고

위험을 감지한 심장은 두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틱을 탁탁 두드리며 앞서 내려가는 산언니는 힘이 되지 않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눈에 띄는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슬그머니 주워들었다.

흘깃 돌아보던 산언니가 산신령 같은 내 모습을 보더니

까르르 웃는다.

웃음 소리엔 조롱이 들어 있다.

그 썩은 나무 막대기로 멧돼지와 맞서 싸우겠다고?

냅둬요. 없는 거 보다 나으니까.

나타나면 살살 달래 보낼 생각을 해야지.

하이고, 그러셔요? 갸가 말귀를 알아먹는답니까?

안 그럼 어쩔 건데?

짝대기라도 휘둘러 보거나 나무에 매달려 보거나.

 

주거니 받거니 말장난 하는 사이

화사한 꽃으로 뒤덮힌 누리장 나무가 새하얀 산꿩의다리가 보인다.

꽃에 홀려 걸음을 멈추니 산언니가 또 비아냥거린다.

멧돼지 무섭다고 호들갑 떨던 인간이 누구더라...

 

까짓거,멧돼지 출몰하면 대화와 협상은 언니가 알아서 할 테고...

바스라질듯 쥐고 있던 썩은 나뭇가지를 훽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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