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던 여행이었다.
단풍 곱고 물 맑은 곳에서 양은냄비에 너구리 라면도 끓여 먹자 다짐했다.
면발 몇 가닥 남긴 국물에 말아먹을 꼬드리한 밥 짓느라 신새벽에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그만 박물관에 전시하면 좋을 만한 실땅님의 오래된 애마에 몸을 실었다.
그 먼 남쪽나라는 우리를 반기는 것 같지 않았다.
아침 굶은 시엄니 같던 하늘은 내소사에 도착하자 기어이 싸늘한 빗줄기를 퍼부었다.
대책 없이 사는 데 이골이 난 우리는 긴 푸념 조차 사치인가 싶어 때리면 때리는 대로 비를 쫄딱 맞았다.
부처님의 가피가 미치지 못한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개 떨듯 떨면서도 사는 게 다 그러려니...좋았다.
냄새만 그럴듯한 절 앞 식당에서 내맛도 네맛도 아닌 바지락전과
하루이틀만 더 있으면 화석이 되게 생긴 미이라 바지락이 널브러진 다시다향 그윽한 칼국수 국물로
한두 시간만 더 있으면 냉동인간 되게 생긴 몸땡이 녹일 때까지만 해도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이 남아있었다.
해가 저물고 빗줄기는 더욱 사나워졌다.
잔인한 운명는 꼭 자빠진 놈 한 번 더 밟고 간다던가.
가뜩이나 묵은 피로가 켜켜이 누적되어 깃털 하나만 더 올려 놓으며 팍 고꾸라질 지경이었던
몸뚱아리가 나 이제 좀 드러눕것소 선언을 한다.
뱅뱅 돌던 멀미는 멀건 칼국수 국물과 여행의 설레임을 반납하고서야 겨우 멎었다.
가면 하루 묵을 데야 지천이라 호언장담하던 실땅님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 것은
이 단풍 시즌에 예약도 없이 방을 달라는 사람이 어딨느냐며 인사치례로 측은한 눈빛을 3초 정도 주고는
총총 돌아서는 관광호텔 직원의 등짝을 보고 난 직후 부터다.
그 이후 연속해서 들어야 했던 방 없습니다란 냉정한 말,마치 테이프 되돌려 듣기 하는 줄 알았다.
설마가 사람 여럿 잡고 난 뒤에야 담양 시내에서 숙소 얻기를 포기하고
방향을 틀어 장대비와 어둠을 뚫고 광주를 향해 달렸다.
소낙비는 내리구요 허리띠는 풀렸구요
업은 애기 보채구요 광우리는 이었구요
소코뱅이 놓치구요 논의 뚝은 터지구요
치마폭은 밟히구요 시어머니 부르구요
똥오줌은 마렵구요...
장사익 2집에 나오는 삼식이란 노래다.
그 경황에 이 우스꽝스런 노랫말이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차 창을 박살이라도 낼 듯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 기막힌 상황과 내 처지를 저울질해 봤다.
뭐가 더 나을 것도 없다.
내소사 (전북 부안)
대웅전 꽃창살
운수사
수 많은 진사들이 솔섬 솔섬 하길래 뭐 대단한 거라도 있나 했다.
물 나간 바닷가에 벌쭘 드러난 주먹만한 바위 하나, 숭숭 소나무 몇 그루. 에게!
다음 날, 명옥헌 가는 길
소쇄원
죽림원
대밭에 차꽃 한 송이 말갛게 피었다.
다 알아서 척척 찍어준다는 똑딱이 자동 믿은 내가 바보다.
백양사 (전남 장성)
산사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단풍 반 사람 반.
실땅님의 간절한 기도가 부디 그곳에 가 닿기를.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백 설백 천지백! (0) | 2013.11.27 |
---|---|
첫눈 (0) | 2013.11.18 |
축! 대장님의 무사귀환 (0) | 2013.10.29 |
딸이 있는 세상 (0) | 2013.09.28 |
비둘기낭 폭포 (0) | 2013.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