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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Book소리

그리고 산이 울렸다

by 타박네 2013. 12. 7.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자

몇 해 전 이른 아침 한탄강 거저울길을 산책하며 보았던 거미줄이 떠오른다.

그 거미줄에 맺힌 말간 이슬방울들은

이제 막 번져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수정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인드라망.

인도의 신 제석천이 사는 도리천 하늘을 뒤덮고 있다는 그믈이다.

그믈 매듭마다 달린 영롱한 구슬들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천상과 사바세계를 비추고

다시 서로가 서로에게 제 모습을 비추고 있다 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는

불교의 연기법( 인연생기)과 인드라망의 관계를 

나는 그 송알송알 이슬 매달고 있는 거미줄로 이해했다.

들꽃 한 송이와 부드러운 바람 한 줄기 그리고 비와 햇살처럼

 너와 나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얼키고 설켜

네 모습을 내가 담고 내 모습을 네게 담아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는 인연,

인드라망은

우주 삼라만상이고 지상세계이고 나이고 너이고 꽃 한 송이,겨자씨 한 알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570쪽에 이르는 제법 방대한 이야기를

인드라망 단 한 마디로 함축했다.

 

할레드 호세이니.

작가의 전작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이미 감명 깊게 접했던 터라

세 번째 그의 신작이 무척 반갑다.

 

1952년 가을 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아버지 사부르가 어린 아들 압둘라와 요정같은 딸 파리에게

마을을 돌아다니다 한 아이만을 골라 잡아간다는

악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 된다.

그 동화같은 이야기는 뒤이어 전개될 가난이 휘두른 잔인한 폭력 앞에서

저항 한 번 못하고 딸을 버린 아비의 절망과

그로인해 생이별한 오누이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한다.

 

거기서 잠시 책장을 덮었다.

쫄쫄 굶다가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았을 때처럼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만난 참 맛있을 것 같은 책을 두고

야곰야곰 아껴가며 먹을까 폭풍 흡입을 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아프가니스탄의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그리스로 종횡무진 무대를 바꾸고

세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그 무대에 등장했다 사라지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각각의 이야기 조각들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낱낱의 절절한 슬픔과 그리움,절망과 회한,치유의 조각들은

 마치 서로를 비추는 도리천 하늘그믈의 구슬 같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인연은 시공을 초월할 만큼 무섭도록 집요한 것인가,

눈물나게 아름다운 것인가.

인연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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