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 안 읽으세요?
독서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 불쑥 묻는다.
그러고보니 수다판에서 일상의 푸념과 음담패설 사이사이 양념처럼 끼워넣던 책 이야기가 빠진지 한참 되었다.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서너 권의 책은 몇 달째 묵묵히 그저 머리맡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서울을 오가며 전철 안에서 내용과 실질적 무게가 비교적 가벼운 책을 읽곤 하지만
그마저도 집중하는데 어려움 겪고 있다.
며칠 전, 광장시장에서 볼일을 일찌감치 마치고 자주 가는 종각의 한 서점에 들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을 요량으로 평소 좋아하는 신경숙 작가의 신간을 골라들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짓는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내가 그 책을 빌려가 읽고는 얌전히 돌려줬다는 것이다.
내가?
......
이런 영혼 없는 독서를 봤나.
평소 나는 다독 보다는 정독을 추구한다.
느낌이 좋은 책의 경우 두세 번 더 읽어야 직성이 풀리다보니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고는 뒤늦게 서점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또한 전설이 되어가고 있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떨어진 시력과 두 번만 더 써먹으면 백 번을 채울 갱년기 우울을 핑계 삼으려니 조금 치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여기저기 헛삽질하느라 관심과 집중력을 상실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요즘들어선 이왕지사 버린 몸 확 더 삐뚤어져버릴테닷! 하는 심정으로 중앙도서관에서 하는
독서토론 동아리 모임에도 결석을 밥 먹듯 하고 있다.
주문한 책 두 권이 왔다.
<유대인 이야기>와 <다, 그림이다>.
지난 주 화요일,내 전용전철인 1호선을 타고 내 단골시장인 광장시장에 가는 중이었다.
평소 혐오하던 신인류 호모 인터네티쿠스 짝퉁 대열에 슬그머니 합류한 내가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는 옆에서
참하게 생긴 젊은이가 참 맛나게도 책을 읽고 있었다.
처음엔 흘깃 한 번 보았지만 그 진지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꾸 곁눈질을 하게 되었다.
뭘까?
무슨 책이길래 저리 푹 빠졌을까.
전철을 타고 다니며 그런 사람들 가끔 본다.
옆 사람이 읽는 신문이나 책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머리통을 들이미는 사람.
심지어 게임 중인 청년의 스마트폰에 자기 손가락을 갖다대던 어린 학생도 봤다.
대체로 그런 상황은 남들 먹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과 비슷해서 측은하면서도 비루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날 내가 그랬다.
내려할 역이 가까워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사정이 급하면 체면이고 나발이고 없다.
노골적으로 고개를 꺽어 책장에 가려진 책의 제목을 훔쳐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제2의 뇌,휴대폰 메모장에 꼭꼭 눌러 써 두었던 <유대인 이야기>.
또 한 권은 영혼 없는 독서의 실체를 눈치챈 친구가 한 마디로 딱 '내 스타일'일 거라며 추천해준 <다, 그림이다>.
칠팔월 삼복더위가 오월에 놀러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뜨거운 하루였다.
잘잘 쏘다니기 버거운 날이 빨리도 왔다.
딱히 병명을 붙이기도 애매한 자근자근 쑤시는 뼈마디 통증은
이제 한 번만 더 써먹으며 백 번 채울 갱년기 증세라 치고
덧없는 헛삽질에 지친 우울한 영혼은 오랜 채식의 부작용입네 옴팡 뒤집어 씌우고...
그래,자빠진 김에 쉬어 가자.
장식용으로 쌓아둔 책이나 뒤적이며 방구석에서 늘어지기 좋은 계절 아닌가.
장식용으로 달고 다니는 머리통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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