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오라는 데도 갈 데도 없어 무작정 좀 걸어나볼까 하던 차에
복수초 보러 가자는 전화가 온다.
만약 복수초가 음식이었다면 벌써 질려 복자만 들어도 신물이 넘어올 판국이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꽃에 산바람까지 쐬자는 달착지근한 유혹 아닌가.
백수에게 가출은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씻는 둥 마는 둥 얼굴에 물만 바르는 세수 의식을 번갯불에 콩 볶는 속도로 해치우고
9시 40분,전곡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내산리행 버스에 몸을 던져 넣었다.
어둡고 무거운 하늘, 피부 조직을 뚫고 들어가 곧바로 뼈로 스미는 칼바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까지 배려할 여력이 없는 것 같다.
난 괜찮다.
평소 자동모드에 맞춰두고 게을러터진년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는 모양새로
똑딱똑딱 하던 짓을 잠시 보류하고 요리조리 카메라를 살피는 여유까지 부렸다.
A모드 어쩌구 어쩌구 언듯 주워들은 전문가의 풍월이 떠올라
이리저리 돌리며 꾹꾹 눌렀더니 허연 영혼사진에 오밤중 귀곡산장까지 가관이다.
게다가 열서너 장 찍었을 뿐인데 밧데리 통이 텅 비어버린다.
충전한다는 걸 또, 또 깜빡했다.
하긴 뭐 웬 눈 큰 동물 하나가 나타나 앞태를 보자 뒷태를 보자 하며 알짱대는 것도
꽃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조금만 머물다 일어설 참이었다.
아무튼 머리통으로 벽에 못 박는 일을 하면 했지 이런 식으로 머리 쓰는 건 나하고 안 맞아.
손이 아닌 손모가지에 의해 뽑혀 무참히 바위 위에 던져진 복수초와
줄기가 얼어 쓰러진 너도바람꽃이 많이 보인다.
한세상 사는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꽃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는다.
특히 때아닌 춘설이나 뼈 시린 꽃샘추위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꿈에 그리는 님인양 설중화를 고대하는 수많은 진사님들에겐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참 그렇다.
포도청 마당에 칼 차고 앉은 춘향이처럼
눈 속에 갖혀 가까스로 버티고 선 그 가녀린 줄기와 피로한 꽃이파리를 볼 때마다
얼마나 놀랐을까,꽃잎 시리겠구나,견디고 있구나...
인간의 시선에서야 강인한 생명력,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겠지만
그것은 마치 돼지가 삼겹살 가득 든 접시를 들고 참 맛있답니다 하면서 방긋 웃는
식당 간판 그림을 볼 때처럼 곤혹스런 풍경이다.
사는 일이 만만한 콩떡이 아닌 우리네나
죽음같은 긴 겨울을 견디고 이제 겨우 세상을 행해 고개를 내민 꽃들이나
따스함이 간절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므로.
누군가 씹다가 척 붙여둔 껌딱지 모양의 버섯.
가슴 텅빈 나무에 관심이 많은 산언니.
흙을 채워 꽃씨라도 묻어두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