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쯤 슬그머니 무단침입을 하더니 그대로 눌러앉은 파리 한 마리.
집주인 없을 때 네활개를 치며 주인 행세를 하던 댄스파티를 하던 그건 상관 없지만
길 닦아놓으니 거지가 먼저 지나가더라고
밥상 차려놓으면 어디선가 바람처럼 날아와 시식하자 덤비고
불 끄고 잘라치면 귓볼에 달려들어 놀아 달라 촐싹방정,
내가 최근들어 참을 인자를 화두로 내걸은 걸 눈치라도 챈 건지
아주 기고만장 안하무인이다.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을 수만 있다면
살생을 금하라는 부처님의 말씀도 있고
제깐 게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나 싶기도 하고
심심산골 절간방 같이 적막한 집구석 앵앵 소리라도 어디랴 치면서
적당한 동거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뭐 애당초 소통 불가.
다이소에서 500원 주고 연두색 파리채 하나를 사 왔다.
색깔별로 좌르르 진열된 중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고른 색이다.
장담컨대 내 쇼핑 역사상 이보다 더 심사숙고한 경우는 없었다.
녀석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될 빛깔이
붉거나 거무스름하다면 그건 더 잔인할 것이다.
연둣빛은 내 마지막 배려인 셈이다.
물론 감사 인사는 못 듣겠지만.
공포의 살상무기를 눈치챈 걸까.
깐족거리며 약올리기를 일삼던 녀석의 기세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급기야 지금 내 책상 옆 선풍기 위에 다소곳 앉아
한번만 봐달라 두손 모아 싹싹 빌고 있다.
잘못을 하고도 뻔뻔한 인간들보다 차라리 네가 낫다 싶은 마음에
일단, 집행을 유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