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있는 여운의 딸네 집에 식탁 하나를 싣고 가야할 일이 생겼다.
핑계김에 서방질한다고 때는 이때다 얼씨구 세 친구가 모였다.
원목식탁을 구겨넣을 차는 순정이 몰고왔다.
더럽게 온 갱년기 증세로 어지간하면 늘 심사가 뒤틀려있는
나를 자극하지 않으려 앞자리 비워놓고
접어제낀 뒷좌석 짐짝 사이에 여운이 낑겨앉았다.
사실 말이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든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하다면 수다 떠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의정부 빠져나가는 데 뻥 조금 보태면 반나절 걸린 거 같다.
해본 가락이 있다고 내비년 말 무시하며 까불다가 쌩고생만 직살나게 했다.
게다가 조그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운전을 어찌나 터프하게 하는지
차량 문 손잡이를 붙잡고 버티느라 어깨가 다 뻐근할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야말로 산고 끝에 의정부를 빠져나와 안정적으로 길을 잡자
우리 신랑이 잘 놀다오라고 세차 깨끗하게 해놓고 기름도 만땅 넣어놨다며
순정이 염장질을 한다.
신랑은 개뿔!
여운 딸이 추천한 춘천맛집 토담 숯불닭갈비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순정이와 여운이 닭갈비를 뜯을 때 나는 양념 잘 밴 더덕구이를 뜯었다.
남의살 먹는 자리에서 억울한 기분이 안 들긴 처음이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숯불에 넣어뒀던 고구마를 꺼냈다.
잘 익은 고구마껍질을 살살 벗겨 둘 앞에 밀어줬다.
껍질 잘 까네?
반백년 만에 칭찬할 구실 하나를 겨우 찾아낸 순정이가
노란 고구마 속살을 입에 넣으며 한 마디 툭 던진다.
내가 좀 까졌잖아, 은근.
대답이 땅에 떨어져 고물 묻을세라
그래 맞아, 난 톡 까졌고 순정인 발랑 까졌고 진숙인 은근 까졌지.
여운이 탁 받아쳐올린다.
타임머신 필요없이 단숨에 열다섯 그 시절로 돌아간 우리는
배를 움켜쥐고 눈물을 질금거리며 웃었다.
다 늙어 톡, 발랑, 은근이라는 에로틱한 별명 하나씩을 주워들고 왔다.
춘천에서.
엊그제 휴대폰을 신형으로 바꿨다.
통화나 수신에 자주 문제가 생겨 불편하던 참이었다.
마땅히 자랑할 것도 없던 참에 뽀샵기능 완벽한 신상 휴대폰을 여봐란듯 꺼내들고
닥치는 대로 찍어봤다.
족히 이십 년 어려보이는 사진을 보여주니 다들 좋아죽는다.
개발의 편자인 고급 디에쎄랄보다 잘 만든 폰카 하나가 열 효자 안 부럽다.
여러가지문제연구소 김정운 교수의 말을 빌어
남편을 비롯해 지금 내가 처한 모든 상황들을 바꿀 수는 없고
해서 휴대폰이나 바꿔봤노라 허세도 좀 떨었다.
아직 쓸만한 걸 충동적으로 바꾼 거 아니냐며 푸지게 잔소리를 퍼붓던 피오나가
다음 클라우드를 이용해 컴퓨터 메일로 사진 전송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참 좋은 세상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토담에서 식사하고 영수증을 가지고 가면 커피값을 할인해준다는
음악카페 Earth17로 몰려갔다.
소양강이 바라보이게 의자를 배치한 2층 인테리어,센스있다.
매력적인 DJ에게 부탁해
화양연화, 그녀에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나오는
로미와 줄리엣의 주제음악을 신청해 들었다.
밤 이슥토록 떠들고도 못다한 이야기는
순정이 합창단 엠티를,여운이 거제도 가족여행을 다녀온 뒤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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