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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세월 이길 장사 없다고

by 타박네 2015. 4. 15.

        나이를 잊고 산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딸아이가 입지 않는 옷 버리기 아까워

        주책바가지 같거나 말거나 주워 걸치고 다니는 건 차라리 괜찮다.

        신체 나이를 개무시하는 정신 나이가 늘 문제다.

        마음으로 치면 백두대간 종주인들 못하랴.

        잘한다, 괜찮다 스스로 최면 걸며 

        쇠락해가는 몸땡이 속여먹는 것도 한계가 있지. 

        결국 빈정상한 몸땡이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이다.

 

        누적된 피로에다 엊그제 꽃구경에 정신이 팔려 

        발을 헛딛는 바람에 돌밭에 벌러덩 자빠진 후유증이 겹치더니

        그대로 멍석말이 당한 죄인이 되었다.

        죄라면 늙은 몸 학대한 죄.

        팔다리 앓는 소리야 쌍화탕 한 병이면 잠재울 일인데

        입술에 생긴 물집과 혓바늘이 계속 신경을 긁는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는 인터넷 바다에서 

        혓바늘에 직빵이라는 알보칠이란 약을 건져냈다.

        바르는 순간 지옥을 경험한다는 평이 간혹 보였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라니...

        추접을 질질 끄는 건 내 스타일도 아니고 

        앗쌀한 한방 좋아하는 내게 딱 맞춤한 약이다.

 

        머리 속에 누군가 들어앉아

        규칙적으로 망치질을 해대는 것처럼 골이 울리던 어제,

        젊은 기운 좀 받으면 나을까 진통제 먹는 대신 풀씨 동생들을 불러냈다.

        슬픈 일 겪으며 더 홀쭉해진 미니와

        백수 생활에 아직 적응 못하고 방황하는 은화를 앞에 앉혀놓고

        우시장 소마냥 입술 까뒤집어

        허옇게 패인 혓바늘 보여주며 병자랑을 늘어지게 하고 나니 

        그새 두통은 온데간데 없고 우선 반은 치료된 듯.

        뒤늦게 나타난 사오정 경희가 사준 얼큰한 민물새우탕 국물에

        입 안 상처가 화들짝 놀라 오도방정 떨다가

        마침내 얼얼하게 마취 증세를 보이자 이거 이거 다 나은 거 아냐 싶기까지.

        전투적 용어로 확인사살이라고, 들어오는 길에 약국에 들렸다.

        어째 하나마나한 소리 같았지만

        효과는 알보칠이나 덜 아픈 약은 없냐 물어는 봤다.

        단칼에 없단다.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치유하는 법.

        깐노무 꺼,바르는 김에 왕창 발라버리자 하고

        면봉에 약을 듬뿍 묻혀 상처에 댔다. 

        그 때 마침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뭔 슬랩스틱 코메디도 아닌 것이,

        면봉으로 입 안 상처를 쑤셔대고 으악 비명 지르고

        침대에 엎어져 눈물을 질금거리다 한 번 더 바르고는

        으으으 신음하고.

        결과는?

        자고 일어나니 확실히 통증은 덜하다.

        해도 두 번은 못하겠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자면서 가위눌림이 생긴다.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으나

        어쩌다 몸살이라도 나 잠을 설치면 꼭 그런다.

        그래도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늘 비슷한 레퍼토리.

        나는 잠들어 있어 분명 반듯하게 누워 있는데

        현관문이 딸깍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옷자락을 끌며 들어와 내 주위를 돌아다닌다.

        더러는 슬쩍 나를 건드리기도 하고 가슴이나 머리를 누르기도 하는데

        그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여기까지는 수십 년 당했던 그대로다.

        하지만 이번엔 반전이 있었다.

        한둘이 아닌 그것들을 향해 내가 냅다 호통을 친 것이다.

        이 요망한년들, 이런다고 내가 겁 먹을 줄 아냐?

        그 말을 내뱉는 순간 혹시 놈들이면 어쩌지?

        년놈 구별도 못 한다고

        저것들이 나를 비웃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리고 내가 드라마 사극을 너무 많이 봤나 싶기도 했다.

        요망한년 말고 다른 표현이 없었을까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떴다 사라졌다.

        아무려면 어떤가.

        년이든 놈이든 난 무섭지 않다,

        이제는 너희들보다 내가 더 쎄다며 바락바락 악을 써댔다.

        그리고는 일어나야지 이 사악한 꿈 밖으로 나가야지 용을 쓰기 시작했다.

        일어났다 생각하면 다시 그대로

        다시 일어나 몇 걸음 떼었다 싶으면 또 그 자리...

        수없이 반복한 끝에 겨우 가위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이겼다.

        피오나에게 꿈 얘기를 하니 이제 욕쟁이할멈이 다 됐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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