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 종로타워점과 인사동거리,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는 지하철 종각역은 이제 익숙한 장소죠.
설마 또 오겠어? 했던 꽃샘추위가
설마했던 사람들 잡아족칠 기세로 그악스런 아침.
태백산 간다고 산 털점퍼에 털장화,털장갑까지 중무장하고
1호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지인이 에스키모같은 나를 보며 풋! 웃습니다.
아무리 뼈시린 꽃샘추위기로 그 차림은 좀 과하네요.
그래도 봄인데...합니다.
아뇨.
오늘은 절대 과하지 않았어요.
정말 추웠거든요.
내릴 역 대여섯 정거장을 앞둔 즈음 할머니 한 분이 제 앞으로 오셨어요.
당연한 일로 자리를 내어드렸죠.
미안합니다,고마워요 하시고
저는 또 만면의 미소와 함께 괜찮습니다 하는 것으로
형식적인 자리교체 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 정거장쯤 더 갔을까요?
내릴 준비를 하시던 할머니가 저를 보며
덕분에 행복했수,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합니다.
순간 잠시 내어드린 자리 하나로 받는 인사치고 너무 과하다 싶어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죠.
멋쩍게 웃는 수 밖에요.
뒷통수도 긁었나 모르겠네요.
과잉칭찬,과잉친절,과잉보상은 불쾌하거나 불편하거나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과한 덕담은 참 기분좋았습니다.
글이라면 모를까 마음엔 있어도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인사를
자연스레 하시는 할머니가 부러웠습니다.
음식물을 씹는 행위는 노화와 치매,집중력, 감정조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껌만 씹어도 머리가 좋아진다'라는 책을 대충 훑고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일 당장 마트에 가서 대형포장된 껌을 왕창 사다놔야지 했죠.
지난 번 세밀화로 그린 야생화도감에 이어
오늘의 살까 말까 책은 동화 '잠자고 싶은 토끼'였어요.
읽어만 주면 못 재울 아기가 없답니다.
불면으로 검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어른들에게도 효과가 있을까요?
살까 말까 할 때는 사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는 말이 있죠.
저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저는 그래요.
살까 말까 고민한다는 것은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의미이므로 안 사고
줄까 말까 망설여진다면 진정성 부족의 이유를 들어 안 줍니다.
다만 갈까 말까 할 때는 가죠.
일단 가는 건 가고 봅니다.
되돌아 오는 한이 있더라도.
해서...나름의 그 원칙에 따라
살까 말까 망설이던 동화책은 다 읽은 뒤 제자리에 꽂았습니다.
대신 지난 풀씨모임에서 혜진이가 추천한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망설임 없이 구입했어요.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부제를 처음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지만
수록된 시를 읽는 내내 가슴 속에 물결이 출렁입니다.
그 물결은 서늘하기도 하고 따숩기도 합니다.
서점 소풍을 마치고 인사동 거리로 나섰죠.
옛날 과자 파는 곳에서 하얀 십년사탕을 발견했습니다.
주인은 십리사탕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말이 그말이죠.
십리사탕 세 개에 천원.
주머니에 넣어온 사탕 세 개는 삽십리 길 떠날 때 요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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