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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텃밭일기5

by 타박네 2016. 5. 30.

 

      텃밭농사 선배이신 그녀님이 밭에 가보자 합니다.

      어제 꽃탐사 일정이 조금 버거웠는지

      엄살 좀 보태면 환자 시늉하기 딱 좋을 만큼

      풀지 못한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는 아침이었어요.

      이미 사방으로 가지를 뻗쳐올린 토마토 순 자르는 걸 배워야 합니다.

      더는 늦출 수가 없어요.

      꿈에 그리던 님이 오신대도 사랑이고 나발이고

      나 죽겠으니 돌아가시오 할 판국이지만

      아야 소리 한번 않고 졸졸 따라나섰습니다.

 

      텃밭 양철문을 열자마자 그녀님의 한숨이 터져나옵니다.

      최근 신들린 호미질 덕분에

      텃밭 분위기는 반지르르 그야말로 모범 그 자체입니다.

      내심 칭찬을 기대했는데 뜻밖이어도 한참 뜻밖입니다.

      우선 오이와 토마토 지지대가 너무 짧답니다.

      쿨하게 인정.

      브로콜리잎은 잔뜩 키워 뭐할 거냐 묻습니다.

      케일인데요?

      그러자 야자수같은 이파리들 속을 가리키며

      이게 브로콜리 아니면 뭐냐 합니다.

      헐~그러네요.

      케일이 언제 브로콜리로 변신했는지 저는 모르죠.

      그녀님의  발길이 곤드레나물로 넘어갑니다.

      숟가락 명찰에는 더덕이라고 당당히 써 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 이상으로 자란 새싹을 살피던 그녀님으로부터

      덤덤하지만 가슴을 찌르는 지적이 날아듭니다.

      야생화 공부한다는 사람이 더덕과 고려엉겅퀴조차 구별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말은 됩니다만 반박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딸기 좀 드실래요?

      그녀님의 시선을 돌려봅니다.

      하지만 괜한 짓이었죠.

      뭘 좀 깔아줘야지 저래가지고 딸기 먹겠느냐 합니다.

      올해는 시늉이고 내년 수확이 목표라고 슬러덩 넘어갔습니다.

      토마토 가지를 자르려 철물점에서 사온

      전지가위를 보며 실소를 할 때는 따라 웃었죠.

      며칠 전 이미 넘치게 놀림 받았던 터라 아무렇지도 않아요.

      닭 잡자는데 제가 소 잡는 칼을 들고 나타난 꼴이었거든요.

      나중에 복숭아며 매실나무를 심을 수도 있구요, 혹시 아나요?

      과수원을 하게 될지.

      어떻게 했길래 그새 토마토가 이렇게 자랐지?

      무슨 괴이한 광경을 보는 것처럼 그녀님은 연신 중얼거립니다.

      토마토는 그녀님의 상상 그 이상으로 실하게 잘 자랐습니다.

      따라서 잘라버려야 할 가지들도 많았죠.

      어떤 걸 잘라야 하지?둘 다 하도 실해서...

      그녀님이 망설일 때 저는 거침없이 자릅니다.

      드디어 제가 잘 하는 일을 찾은겁니다.

 

      채소 고랑에서 꽃밭으로 이동하신 그녀님.

      꽃동무님이 주신 야생화 씨앗을 묻어둔 고랑에는

      숟가락 명찰만 쑥쑥 자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청진기를 들이대고 속사정이나 좀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를 넘기고 내년에 나올 수도 있답니다.

      그녀님의 말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위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물었죠.

      땅콩 간격은 어때요?

      내가 미처 뽑지 못한 풀들에서 시선을 거둔 그녀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이만하면 됐네.

      앗싸!

      단번에 기분이 좋아져 우리 모닝커피나 한 잔 하러 갑시다

      팔을 잡아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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