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마트에서 장보기를 시작하려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흡! 깜짝 놀랐어요.
도둑 제 발 저린 거죠.
저녁 먹고 들어간다거니 맛있게 먹으라거니
통상적이지만 언제 들어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중에도
머리 속으로는 빠르게 저울질을 합니다.
불행한 소식과 기쁜 소식 중 무얼 먼저 전할까...
결심했습니다.
쓰디 쓴 초콜렛을 먼저 먹이기로.
나 방금 주차하다가 카트 보관대를 들이박았어.
운전석 쪽 뒷문 조금, 아주 조금 긁혔어.
조금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물론 그 조금이란 부욱 또는 찌이익... 깊고 긴 자국을 말하는 거죠.
반 박자 쉬고,
먼 곳에서 떠나온 대답이라 그런지 느리고 가늘게 도착합니다.
괜찮아, 다 그래.
기쁜 소식도 있어.
조금 화사해진 목소리가 재빨리 되묻습니다.
뭐?
나 하나도 안 다치고 하나도 안 놀랬어.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다행이네,잘했어 합니다.
뭐 칭찬까지 기대한 건 아닙니다.
실땅님이 저녁밥 대신 먹자고
방석만한 부추부침개 두 장을 들고 왔습니다.
건강 보조식품으로 아마씨가 좋으니 대마씨가 좋으니 떠들다가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 얘기로 넘어갔어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는 아들에게 뜨거운 기름을 부었다는
끔찍한 뉴스를 전합니다.
가족도 못 믿을 세상이 됐어.
우리 때는 안 그랬잖아.
바깥에서 무슨 짓을 하고 들어와도 가족은 품어줬지,
위로도 되고 말이야.
한숨을 쉬다가 혀를 차다가 실땅님과 나의 우리가 아닌
남편과 나의 우리에 생각이 미칩니다.
헥! 나 오늘 밤 눈 뜨고 자야 하는 거 아냐?
아니면 가끔 한 번씩 눈을 번쩍번쩍 떠봐야 하나?
혹시 삭이지 못한 분을 집까지 가지고 오는 건 아니겠지?
너스레를 떨자 아이고, 지랄도...실땅님이 김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습니다.
장마스러운 비가 진종일 오락가락합니다.
기름 좔좔 흐르던 방석만한 부침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어요.
다이어트에는 아마씨보다 대마씨가 더 좋대.
정말?
나날이 얇고 가벼워지는 제 귀가 팔랑팔랑, 나비처럼 팔랑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