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꽃을 엉성하게 수 놓은 브로치와 향기주머니 컵받침을
번갯불에 콩 볶는 속도로 만들어 농업기술센터 가는 길,
신탄리행 버스 안이었어요.
참하게 생긴 젊은 여자의 하얀 바지 위로
연두색 애벌레 한 마리가 꼬물꼬물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톡톡, 조심스럽게 어깨 노크를 했습니다.
차창 밖 은대리 들판에서 거둔 그녀의 시선이 제게 쏠리자
저는 말 대신 검지 손가락으로 애벌레를 지목했죠.
꺄악! 또는 어머나! 아니면 주여라든가 아, 가끔 아버지!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뭐 그 중 뭐라도 하나를 부르짖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연두색 애벌레를 냉큼 털어버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곧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겠구나 눈을 반짝이던 제 기대는 무너졌어요.
그녀는 비명대신 제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손을 펴 애벌레에게 내밉니다.
손가락을 사다리 삼아 타고 오른 애벌레가 손등에 안착하자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집에 잡아가 단백질 보충용으로 요리해 먹을 의사는 없어 보입니다.
쉼없이 꼬물대는 애벌레가 행여 바닥에 떨어질까 조심스런 손동작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서너 정거장을 더 갔어요.
저보다 한 정거장 앞서 내린 그녀가
가로수 나뭇가지에 애벌레를 내려놓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꽃을 볼 때처럼 가슴 속에 따스한 공기가 차올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분 좋은 긴 숨을 내뿜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