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인 더위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던 지난 주말 교통체증에 이어
살다살다 처음일 전기세 폭탄이 곧 배달 되겠죠.
그렇게 사연 많은 여름의 끝자락입니다.
아직도 폭염의 경고는 계속되고 있지만 바람의 결이 달라졌어요.
어젯밤 마트에 가다가 살에 닿는 청량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집에 들어오자마자 냉동실에 얼려둔 시래기 한 덩어리를 꺼냈습니다.
시원한 곳과 찬것만 찾아대는 중에도 따끈한 국물이 그리웠거든요.
아침을 준비하는 중간중간 껍질을 벗겼습니다.
질깃한 맛도 나쁘지 않지만
긴 더위에 시달린 속을 살살 달래려면 아무래도 부드러운 게 좋을 겁니다.
다시마와 멸치,마른 표고버섯을 넣고 큰 솥단지 하나 가득 육수도 냈습니다.
이제 된장을 채에 걸러 풀고 뭉근하게 끓이기만 하면 됩니다.
밭에서 따온 땡초 서너 개를 송송 다져 넣을까 하다가 그만 둡니다.
간간하고 자극적인 맛을 즐기는 저와는 달리 남편은 순한 맛을 좋아하거든요.
지난 달 호된 허리병과 더위로 입맛을 잃었을 때
이 시래기국을 한솥 끓여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양이 하도 엄청나서,
야! 이거나 배터지게 먹고 그만 죽으라는 거냐? 했지만 결국 다 먹었죠.
된장국이 맛있었던 걸로 봐서 입맛타령을 할 처지는 아니었나 봅니다.
제 입맛의 기준은 된장과 라면입니다.
된장찌개와 국과 라면이 입에서 쓰면 입맛이 사라진 거고 달게 느껴지면 되돌아 온 거죠.
천하의 그 어떤 별미도 된장과 라면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활짝 열어둔 창이 무색하게도 바람은 인색하네요.
그래도 부엌에서 된장국이 끓고 있으니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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