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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텃밭일기14

by 타박네 2016. 8. 30.

            특별한 여행이나 외출을 제외하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동선이 뻔합니다.

             삼지사방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모를까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뻔한 일상과 익숙한 행동반경은 편안하지만 지루하죠.

 

             사실 저는 그 지루함을 모르고 너댓 살 부터 줄창 이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 때 집 앞에서 쉼없이 기적을 울리며

             어서 떠나라고 꼬드기는 경원선 기차에 몸을 던져넣은 적이 었지만요,

             집 뒤로 굽어 흐르는 강물이 매일 밤 꿈 속에 나타나

             돌아오라 돌아오라 너울대는 통에 객지 생활은 두 해만에 끝이 났습니다.

 

             최근들어 꽃소풍 다닙네 하며 수박 겉핥기식으로  팔도 유람도 하고 

             겨우 초보 딱지 뗀 차를 몰고 3번국도를 좀 달려도 보지만

             그 이전까지는 완벽한 우물 안 타박족 개구리였어요.

             그렇다고 고작 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우물 밖 너른 세상으로 나갔다 구라뻥을 치는 건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여기 있었던 저는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갑갑하다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물 안일 망정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이기 때문이죠.

             현관 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순간 제 여행은 시작됩니다.

 

             목적지가 시장이거나 친구집이거나 조금 먼 연천 카페거나 상관없이

             집 나온 이상 저는 길 떠나는 여행자입니다. 

             집들과 골목과 보도블럭과 느리게 자라는 나무가

             도무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오죽하면 함께 죽기로 맹세한 사랑도 한여름 죽맛 변하듯 하는 세상인 것을요.

             그리고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면 새롭지 않은 게 없습니다.

             하다못해 보도블럭 사이를 비집고 나와 기어이 꽃을 피운 민들레도 경이롭기만 합니다.

             주차장 한켠 어르신 쉼터인 평상이 어느 날에는 텅 비어 있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에는 어르신들로 들벅들벅 소란스러운 것부터

             계단 바로 아래 닭장 속 이장님네 닭들이 어느 아침에는 늙은 호박을

             어느 저녁엔 배추잎을 쪼아 먹고 있는 것 까지,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지극히 소소한 다름을 안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진 않죠. 

             하지만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가 그려진 기찻길 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차단기가 설치된 건널목를 건너 다롱이가 살던 골목길은...ㅠ

             이제 잘 다니지 않습니다.

             다롱이가 죽고 없으니 골목에 개나리 라일락 꽃이 피어도 심드렁합니다.  

             요즘에는 반대쪽 육교를 넘어가는 일이 잦습니다.

             친구 재벌네나 실땅님 병원에 가자면 사실 그 길이 최단거리죠.

             육교 위에서 운이 좋으면 세상 무너지는 소리를 내며 발 아래로 지나는

             백마고지행 기차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늘 다니는 길에서 매일 다른 그림 찾는 재미가 시들해질 무렵

             새로운 코스가 하나 추가 됐어요.

             텃밭 가는 길!

             자세히 보니 벽화 속 나무 줄기와 담장 안 실제 소나무 줄기가 이어져 있습니다.

              텃밭 가는 길에 두어 번 이 골목을 어슬렁 거리면서도 눈치 채지 못했죠.

              뒤늦게 보이니 곱절 더 즐겁습니다.

              척 보면 다 알고 빠르게 익히는 것 재미 없어요.                     

             지난 일요일 남쪽나라로 꽃소풍을 떠난 사이

              남편은 텃밭에서 하루 종일 풀과 씨름을 했던 모양입니다.

              호랑이를 풀어 놓을까 소를 키울까 고민하게 했던 풀밭이 아주 말끔해졌어요.

              대박!

              나도 모르게 나온 말입니다.

              물방울 다이아를 받아도 안 나올 감탄사죠.

              비록 고무호스 중간을 싹뚝 베어버리고 낮게 늘어진 호박 줄기를 자르긴 했지만요.

              참,황언니가 준 계수나무와 꽃 두세 송이를 달고 있던 아피오스와

              꽃동무님이 주신 무슨 덩굴식물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긴 했어요.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이제 가을 농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배추도 심고 무씨도 뿌리고 대문 걸어 잠그고 나만 먹을 아욱과 상추도 심어야죠.                  

             풀무덤입니다.

              잘 썩혀 거름으로 쓸 생각입니다.

              나온 곳으로 돌려보내는 게 풀들에 대한 예의일 겁니다.

               제 키를 넘긴 곤드레나물 아래 부추꽃이 참 예쁘게 피었어요.              

 

              올 여름 효자 작물이었죠.

               아직도 실하게 달리기도 하지만 요즘이 더 단 것 같아요.

               해서 욕심을 거둘 수 없게 만듭니다.

               내년에도 이 토마토가 주종목이 될 겁니다.                       

              호박 두 덩이 볕바라기 하며 늙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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