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은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 버전으로 시작됐다.
깊은 밤,서늘한 기운에 놀라 눈을 떴다.
벽이어야 할 곳에 뜯기고 구멍난 창호지문이 곧 쓰러질듯 위태롭게 서있다.
도둑이나 강도 또는 사악하고 검은 기운, 그 무엇이 되었든
작정하고 집안에 칩입한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문을 잠궈야해.
서둘러야해.
주변을 살폈으나 노끈 하나 눈에 띄질 않는다.
극한의 공포 앞에서 생존본능이 구원처럼 찾아낸 물건은
끝이 잘려나가 뭉툭해진 작은 칼 하나.
이때부터 장르는 공포 스릴러로 넘어간다.
문 밖에 누군가 있다.
겨우 나무젓가락만한 부러진 칼을 움켜쥐고 소리죽여 다가간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바로 코 앞에서 맞딱드린 것은 사람의 형태를 한 크고 검은 덩어리.
그 검은 덩어리 사람의 손에는 무협영화에서 본듯한 시퍼렇고 긴 칼이 들려있다.
집의 안과 밖, 정확히 그 가운데 선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실제였다면 찰나였을 그 시간 동안 주마등처럼 스치는 수 많은 생각들을 정리했다.
검은 덩어리는 사악하고 잔인하다.
잡히는 순간 가장 고통스런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만약 내가 집 안으로 도망을 친다면 가족들까지 화를 당할 게 분명하다.
가능하다면 집 밖으로 더 가능하다면 멀리 달아나야겠구나.
마지막으로 꿈은 액션 스릴러가 된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검은 덩어리를 밀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악몽을 꾸는 이유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봤다.
잠재된 불안과 우울감 그리고 현실 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걱정거리 그에 따른 스트레스.
이런 정보쯤은 어린아이도 유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음주, 약물,몸살 감기같은 질병이나 심장을 압박하는 불편한 취침자세.
음,그럴 수도 있겠군.
그런데 원인으로 지목한 뜻밖의 요인이 있다.
취침 전 고지방 음식을 먹은 경우,지나친 염분 섭취,매운 음식.
고지방은 내 전문이 아니니 그렇다 치고,
짜고 매운 걸 즐기는 식성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으로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언스트 하트만 연구에 의하면 '경계투과성'이 큰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악몽을 더 잘 꾼다고 한다.
경계투과성이란 성격의 한 측면을 나타내는 용어로 마음 경계선 다시 말해 그 벽이 얇은 사람은
감수성이 예민해 쉽게 상처받는다고 한다.
그 이론대로라면 악몽을 자주 꾼다는 것은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악몽제조 말고는 천하의 쓰잘머리 없는 감수성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을 터.
이렇듯 수 많은 원인들 중 오래된 내 악몽의 역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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