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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텃밭일기 5

by 타박네 2017. 6. 5.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까 봅니다.

                어지간히 물을 뿌렸다 싶어도 땅을 파보면 속은 버썩 말라있습니다.

                어설피 주면 오히려 해가 된답니다.

                세상사 인간사와 다를 바 없지요.

                그게 뭐든간에 기분좋은 포만감은 안정과 여유를 주죠.

                주려거든 확실하게!

                해서 물을 뿌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래풀 씨앗이 이렇게나 많이 달렸습니다.

                 이걸 다 받아 뿌리면 밭 두어 고랑 보라색 꽃물결 일렁이게 하는 건 일도 아니겠어요.

                 일전에 잎새님이 구해 주신 씨앗은 따로 잘 말려뒀습니다.

                 내년 봄,이 씨앗들과 섞어 심을 생각입니다.

                 비록 출신은 다르지만 제 텃밭에서 의좋은 형제처럼 자라고 꽃 피우게 될겁니다.            

              시금치, 쑥갓,상추,취,케일 대파,부추...

                딱 손바닥만큼씩만 심었어요.

                얼핏 먹잘 것도 없이 보이지만 잎을 따내고 이삼일이면

                다시 본래의 부피를 유지하죠.

                한 마디로 채소 화수분입니다.             

              아이비 사촌쯤 되는 넝쿨성 식물과

                자수정이라는 꽃나무를 구입해 상추밭에 심었습니다.

                단호박 하나와 백장미, 대파도 뒤섞여 있죠. 

                두서도 질서도 없고 조합 또한 희한하지만 저는 이런 게 마음에 듭니다.

                처음부터 짜맞춘 듯 어울리는 짝이 어디 그리 흔한가요?

                어울리다 보면 어울려 보이고 그러는 거죠 뭐.

                다 맞춰가며 사는 거죠 뭐.

              이 구역도 마찬가지.

                고려엉겅퀴와 이름 모를 꽃과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이 평화롭게 공존합니다.

                저희들은 피 튀게 영역 다툼을 하고 있는 지 모르겠으나 보는 이의 눈에는 아름답습니다.

           여과없이 곧장 내리꽃히는 햇살에 살갗이 따끔거리는 요즘.

                 행여 검버섯,기미라도 올라 올까 선크림 처덕처덕 바르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팔토시도 챙깁니다.

                 그럼 뭐하나요.

                 벌겋게 익었다 식었다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얼룩덜룩 구릿빛 피부가 되어 갑니다.

                 늙어도 여자라고 은근 신경 쓰입니다.

                 하지만 살 많이 타셨네요? 하는 인사를 듣는 순간 뿌듯함이 차오르는 건 또 무슨 조활까요.

                 마치 밭일을 정말 열심히 하셨나 봐요 하는 칭찬의 말처럼 들립니다.

                 채소와 키우는 꽃들 사이에서 풀들을 뽑아내는 건 여전히 편치 않습니다.

                 특히나 말갛게 핀 풀꽃은 더하죠.

                 호미를 치들었다 멈칫하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만큼 속 여린 인간이었다고 참내...

                 기어이 살자는 거 죽자고 덤벼 찍어내고는 또 스스로 흐믓해 웃습니다.

                 아직도 남아있구나.

                 마음 속 고운 결 하나, 이러면서요.

                 이중인격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합니다.

                 지킬과 하이드를 다른 데 가서 찾을 필요가 없어요.

                 텃밭에 오시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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