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산 근처에서 실장님이 느닷없이 차 머리를 돌렸다.
일단 거기 먼저 가 보자.
옆자리에 실려 다니는 나야 뭐 아무려나...
맘대로 하쇼.
등산로 초입까지 들어가는 계곡 옆길은 지난 해보다 더 거칠다.
오르는 길에 쌓인 낙엽을 밟으니 거의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그리고 연이은 진달래 꽃길.
꽃길만 걷게 해줄게는 이런 데 와서 할 말인 듯.
지난 해 탐스런 꽃을 보여준 큰꽃으아리.
길에서 가까스로 비켜나긴 했으나 안전해 보이진 않았다.
근처에서 주워온 돌로 영역 표시를 하고 마른 나뭇가지 하나 꽂아주었다.
꽃 피면 다시 보자.
능선에서 만난 유일한 꽃이다.
복주머니란
춥고 어두웠던 시간들을 견디고 다시 왔구나.
고맙다.
제멋대로 볶음밥과 눌은밥,달래장떡 몇 조각.
사방이 탁 트인 능선에서 점심을 먹었다.
줄곧 차고 다니던 허리보호대를 풀자 좀 살 것 같았다.
이건 뭐 참피언밸트도 아니고 코르셋도 아니고...휴우
누가 시킨다고 할 짓은 절대 아니지.
자꾸 웃음이 났다.
산에 가면 이래저래 웃을 일 뿐이다.
올라온 길 반대 쪽 상황은 어떤지 조금 걸어봤다.
오십보 백보.
아는 길로 되돌아 나왔다.
남산제비꽃
저쯤 어디에 무슨 꽃 군락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우리가 그랬잖아.
다음에는 꼭 보고 가지고.
여기까지 실장이 말하면 다음엔 내 차례다.
할미꽃.
약속이나 한듯 기억을 조각내 나눠 갖는다.
나는 꽃이 있었던 장소를 기억 못하고 실장은 무슨 꽃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합치면 완성!
옛날 동화책에 나오는 앉은뱅이와 봉사 이야기랑 비슷하지 않아?
또 웃는다.
좌라락 깔린 시든 잎들로 미루어 보아 각시붓꽃의 지난 봄 영화는 대단했었던 듯.
솜나물
해가 길어 좋다.
명성산 자락을 휘젓고 내려왔는데도 시간이 남는다.
다시 광덕산으로.
운 좋으면 나도바람꽃을 볼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연령초도 한두 송이?
얼레지
올들어 예쁜꽃 찾아내는 재주가 확 늘었다.
그건 순전히 이 휴대폰 카메라 덕이다.
사진찍기보다 어슬렁 어슬렁 돌다니는 시간이 많으니 당연한 결과다.
갖다 대고 톡! 터치 한 번으로 촛점 맞추고 찰칵!
순식간에 기념샷 남기고 다시 어슬렁.
실장님이 촬영 삼매경에 빠져 있는 시간 나는 대부분 어슬렁이다.
시력이 좋아져 잘 찾는 게 아니라 시간이 많아서 잘 찾아내는 거다.
큰개별꽃.
키 작은 꽃들 사이에서 박새의 큰 몸집은 그악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너른 잎에 살몃 기대어 핀 얼레지나 현호색 홀아비바람꽃을 보고 있노라면
박새가 서둘러 잎을 키운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박새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아직 싸늘한 골짜기 바람을 저 여린 꽃들이 홀로 견뎌야 했을 것이다.
홀아비바람꽃
늦은 오후,습한 바람이 몰려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홀아비바람꽃들은 몸살을 앓았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꽃 가까이 들이대고 있던 휴대폰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고, 팔 떨어지겠네.
잠시 쉴 요량으로 홀아비바람꽃에서 휴대폰과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무심히 고개를 돌려보니
어머나, 세쌍둥이다.
얼떨결에 나도바람꽃을 찾았다.
연령초
금강제비꽃
붉은참반디
동의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