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길은 모난 구석 하나 없이 둥글둥글 순하디 순한 친구같다.
살 만큼 살고도 여전히 뾰족한 내가 늘 그리워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멋진 뒷배경도 없고 빼어난 자태도 아닌, 비록 꼬라지가 비루먹은 강아지 같더라도
무한 애정을 더하면...충만하다.
꽃밭 천덕꾸러기인 으름덩굴을 캐내서 싸들고 갔다.
본래는 담장이었으나 여차저차한 사연으로 일명 팬트하우스가 된 자리,
노랑참나리와 백작약 바로 근처에서 눈치 없이 세력을 키우는 바람에
지주님의 눈엣가시로 전락해버렸다.
이 사태가 나기 전 옮겨 심어보려 했으나 워낙 뿌리가 단단히 박혀 있어 실패했었다.
꽃에 귀천을 가리지 않겠노라는 신념은 물 건너 간 지 오래.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이,본의 아니게라 빡빡 우겨보지만 실상 깊은 내면의 본의인
차별과 불공정이 난무하는 게 손바닥만한 내 꽃밭이다.
버티고 버티던 으름덩굴은 결국 뿌리 일부를 잘리고서야 뽑혀졌다.
그리고 강제 이주.
여기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 속 나무 아래 심었다.
뿌리 잘린 아픔에 대한 보상으로 최상의 환경을 주고 싶었다.
돌을 골라내고 심고 생수 한 병을 남김 없이 쏟아부었다.
그리고 상상을 해봤는데 참 좋은 거다.
마치 하겐다즈 커피 아이스크림처럼.
좋은 거 더하기 좋은 거.
무언가를 심어둔 자리를 찾아내 갖고 간 낫과 호미로 제초작업을 했다.
무언가가 무엇인지 모르므로 함부로 베어버리거나 뽑으면 안되지만
우거진 풀밭을 보면 무언가라도 해야 할 것같은 생각이 들기에.
꽃밭 가장자리로 밀려나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삼잎국화 새순과
산길 들길 오가다 한두 개 혹은 너댓 개 뜯은 쑥부쟁이 참나물 취나물을 섞어 데쳤다.
나물 반찬으로 하면 나 하나 잘 먹고 말겠지만 시금치 대신 넣어 김밥을 만드니
여러 사람 입이 즐거워졌다.
은근 손 가는 음식인 데다 싸고 나눠 담아 돌리고 하자니 아침 나절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바빴다.
당장 내 몸이 덥다고 카사장한테 얼음컵 두 개를 부탁했는데 이건 좀 아니었다.
일기예보 무시하는 버릇을 고치지 않는 한 반복될 불편함.
보리차인지 커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슴슴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김밥을 먹고 나자
한기가 몰려왔다.
서둘러 가방을 정리하면서 카사장, 뛰자.
카사장은 낫으로 석석 베고 나는 손으로 똑똑 꺽었다.
조금 모자라 쑥떡 한 말을 못 하고 있었다는데 조만간 먹게 되는 거니?
둘이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야말로 일석이조,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늘 그렇듯 인적이 거의 없는 길이니 망정이지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연강길에 강도 사건 여러 번 터진 줄.
큰애기나리 삼만평 앞에서,
이 찬란한 으름덩굴 꽃에 눈을 맞추며,
오래 전 민통선 안에서 본 이후 두 번째 대면인 내 얼굴만한 참취 잎을 보면서,
그리고 드디어 찾아낸 앵초 군락지에서
환호인지 비명인지를 얼마나 질러댔는지 목이 다 컬컬하다.
눈물 날 뻔 했던 한 송이.
옆으로 흙이 무너져 비 오면 그대로 쓸려나가게 생겼다.
돌을 주워와 급히 사방공사를 하고 하는 김에 주변 풀들까지 정리했다.
첫사랑은 소중하니까.
실한 이 모습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어 데치지 않고 두 할매 친구들께 곧장 갖다 드렸다.
줄기를 톡 잘라 잘근잘근 씹으시며 참 보기 좋았겠네 하셨다.
그 말 한 마디는 내 기쁨에 예쁜 장식이 되었다.
집에 계신 지 확인 전화를 했을 뿐인데 올라가 보니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한 번 쪄 다시 지은 보리밥과 감자와 두부 청양고추를 넣어 자글자글 끓인 강된장
그리고 민들레 당귀 상추쌈.
평소 먹던 양의 곱배기를 먹었다.
정겹고 소박한 밥상, 얼마만인지.
언제부턴가 눈물주머니가 고장나 안구건조증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질금질금 나오는데 비극이 아닌 희극 상황에서도 예외가 없어
난감한 순간이 늘어간다.
가슴 속에서 따순 물같은 게 출렁이다 울컥 치밀고 올라오는 걸 상추쌈으로 밀어 넣었다.
여기저기 산재한 앵초는 대부분 산딸기같은 덩굴과 쌓인 낙엽으로 영역 확장은 커녕
겨우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우선 몇 군데만 정리하고 나왔다.
생뚱맞게 딸기가...길가에.
오랜만에 비를 맞았다.
정말 오랜만에 비에 젖은 흙 냄새를 맡았다.
머리통에 구멍날 정도의 빗방울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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