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천둥 번개에 맞으면 머리통에 구멍 생길 정도로 굵은 빗줄기까지
하늘이 온통 쌩 난리부르스였다.
그래봤자 여름 끝자락 비일 뿐, 가을이 현관 앞에 서성이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점심 때도 다가오고 있고.
내가, 삼동네에 요리 못하기로 소문난 내가
음식에 관한 포스팅을 한다면 지나던 개도 클클 비웃을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내 유일한 자랑거리이기에 용기를 내서~
아, 자랑이라고 하니 혹시 특별하고도 귀한 식재료를 쓰거나
며느리한테도 알려주기 싫은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거 아냐? 하고
기대하면 곤란하다.
우리집에 와서 수제비를 먹어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칭송을 하는 덴 이유가 있다.
무조건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가 허기진 상태에서 먹이는 것.
그 이상 없다.
그게 내 비법이다.
가끔 찬 없는 밥을 그것도 혼자서 먹어야 할 때
밥상 앞에 앉아 잠시 두 눈을 감고 '난 지금 사흘을 굶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하고
최면을 건 후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뜨고는
눈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면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가 없는데
언젠가 이 말을 들은 피오나
"그냥 굶으면 될 걸,뭐 그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해?"하며 혀 차는 소릴 한다.
개뿔도 모르는 소리.
제 어미 나이가 되기 전엔
밥 힘으로 산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그저 웃고 말았다.
오늘도 점심 때를 훌쩍 넘긴 시간, 슬슬 멸치 육수를 내기 시작했다.
끓는 냄비 안에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멸치가 날 바라보는 게 싫어
어지간하면 똥 발라내며 대가리도 떼 버리는데 오늘은 대충 넣었다.
다시마, 마른 표고버섯 서너 개씩 퐁당, 비린내 없어지라고 생강술도 조금.
아기 주먹만한 감자 두 알을 믹서기에 드르륵 갈아
물 대신 넣고 밀가루 반죽을 해 놓았다. 대충!
요 대목에서 시금치나 비트같은 채소를 갈아 넣어
흐여멀건한 반죽에 꽃단장을 시켜줘도 좋고
쑥이나 뽕잎, 녹차가루등을 이용해 수제비의 품격을 높일 수도 있다.
애써 치대지 않아도 설렁설렁 뭉쳐 비닐에 싸 두면
지들끼리 엉겨붙고 들러붙는지 절로 차진 반죽이 된다.
손가락에 잡히는 대로 뚝뚝 뜯어 넣고 부르르 끓어 오르면
마지막으로 호박 몇첨, 파, 풋고추, 투하~
국간장과 소금간을 해 말갛게 끓인 것 한사발을 얼른 퍼 놓았다.
들깨를 싫어하는 피오나 거.
생 들깨를 그때그때 갈아 채에 걸러낸 들깨물을 이용하면
더이상 환상적일 수 없지만 귀차니즘의 대가인 나.
가을이면 들깨 한 말을 사서 방앗간에 맡겨 거피를 해 놓는다.
그리고는 아무 음식에나 마구 들이부어 먹는다.
그게 바로 내겐 멍멍탕이나 삼계탕을 대신하는 보양식이 된다.
다 끓은 수제비에 거피한 들깨가루를 푹푹 퍼 넣고 휘이휘이~~~ 저어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들깨수제비 완성!
국물이...국물이...끝내주게 걸쭉하다.
여수 돌산에서 사온 갓김치와 아직 익지 않은 배추김치를 곁들여 먹었는데
울냥반과 피오나의 숟가락질 속도, '겁나게 맛있는' 초고속 이었다.
슬쩍 시계를 보니 그럴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