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마운 분이 고들빼기를 캤다며 보내주셔서
어젯밤 잘 다듬어 슴슴한 소금물에 담궈두었다.
자연산 고들빼기는 보통 3일에서 5일 정도 물에 울궈
쓴기를 뺀 뒤 김치를 담근다고 하지만
쓴맛이 간절하게 그리웠던 난 하룻밤만 울궜다.
인생을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이 반반씩 섞인
초코렛 상자에 비유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조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산다는 것은
소태처럼 쓰디쓴 맛 중간중간
입안에 넣자마자 스르르 녹아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황홀지경 솜사탕의 단맛을 살짝 곁들인
치사하고 억울한 밥상같다는 생각.
낙방과 실연, 실직같은 인생의 쓴맛을 보고 난 뒤
별일 없이 그저그렇고 무덤덤한 오늘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처럼
그 어떤 음식이라도 고들빼기의 쓴맛 뒤를 따라 들어오면
황홀할 정도로 달다.
오늘 아침 쌉싸래한 고들빼기 김치 한 보시기로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비웠다.
밥이 꿀보다 더 달다.
오이지 눌러 놓을 때 쓰는 넓적한 돌맹이.
시어머님이 쓰시던 건데 대를 이어
내가 여러 용도로 잘 사용하고 있다.
단, 부부싸움 할 때 무기로는 쓰지 않는다.
찹쌀풀에 연천산 태양초 고춧가루(아무데서나 울컥 솟아나는 애향심 ),
마늘 , 생강, 홍고추와 토실한 햇밤 열 개쯤 까서 나붓나붓 썰어 놓고
맑은 멸치액젓에 물엿으로 단맛을 첨가한 양념을 좀 넉넉하게 준비했다.
한동안 난 이 쌉쌀하고 씁쓸하고 쌉싸래하고 쓰브름한
이 고들빼기 김치를 벗삼아
남아돈다는 쌀 소비운동에 앞장 설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