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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밥상

꿀꿀이죽

by 타박네 2010. 11. 28.

우리집에선 이걸 꿀꿀이죽이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김치콩나물죽이겠지만

라면 무진장 좋아하는 내가 어느 날엔가 다 된 죽에 코 빠뜨리는 격으로

라면 하나를 팍 뽀샤 넣으면서 얻어걸린 이름이다.

이게 사람 먹는 음식이냐, 꿀꿀이죽이지,

입꼬리를 한쪽으로 찢어올리며 한껏 조소를 날리던 친구도

막상 먹어보더니 흐믓한 미소를 지었던 꿀꿀이죽.

예전 친정어머니의 손에서 

찬밥 한덩이리가 온 가족의 배를 채울 한 끼로 변신하던

요술같은 음식 꿀꿀이죽.

비록 싸락눈이지만 첫눈이 내린 주말.

첫눈을 보면 떠오르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다면,

첫눈이 오는날 손을 잡고 걷다가 향이 좋은 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이

지금 곁에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밤사이 내린 눈은 햇살이 번지면서

오래 전 꾼 꿈처럼 사라져버리고 가슴까지 시린 찬바람만.

 

이럴 때 필요한 건 뼛속까지 뜨겁게 데워줄 국밥 한 그릇. 

언듯 보면 참 성의 없는 음식처럼 보이기 십상인 꿀꿀이죽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멸치육수 만들기.

눈 동그랗게 뜬 대가리와 똥을 발라내고 마른팬에 잘 볶아낸 멸치와

(작다고 절대 깔보지 않고 정성껏 염하는 자세로 임했다)

마른 표고버섯, 다시마에 생강술 조금을 넣고 끓여냈다.

신김치 송송 썰고 김치국물은 채에 걸러 준비한다.

그래야 죽이 탁하지 않다.

 육수에 콩나물 한 줌과 김치를 넣어 끓이면

이대로 시원한 김치콩나물국이고.

이제부터 깔끔하고 칼칼한 국에 분탕질을 할 차례.

현미밥인 관계로 누리끼리한 찬밥 한공기와

꿀꿀이죽의 화룡점정인 라면 반 개가 입수 준비를 하고 있다.

찬밥이 좀 퍼질 때 쯤 라면을 넣고 라면이 거의 익을 때 계란 투하.

계란 한 알로 인해 5대 영양소에 신경을 좀 쓴

지혜로운 주부가 된 듯하기도 하고. 

피오나와 내 식성이라면 고추가루 한 숟가락 팍 풀거나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 

벌겋고 화끈한 국물을 즐기겠지만

매운 거라면 질색을 하는 울냥반을 위해 흐여멀건하지만 담백한,

그러면서 라면의 기름기가 어우러져 부들부들한 꿀꿀이죽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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