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부터 김치부침개만 먹었더니 속이 느끼하다.
뭐 상큼한 게 없을까.
비명횡사한 남의 살 안 먹는 내 밥상은 어지간하면 상큼하긴 하지만.
궁리 끝에 있는 채소는 냉장고에서 해방시켜주고
없는 채소는 마트로 달려가 급 조달해
한자리에 몽땅 집합시킨 내맘대로 김밥.
계란 지단 부치는 것 말고 달리 불 앞에 설 필요가 없는 대신에
아롱이 다롱이는 되지만, 홀쭉이 뚱땡이, 땅꼬마 꺽쇠가 안 되도록
두께와 길이를 엇비슷하게 샤샤샥 썰어주는 게 관건이다.
연천 바닥의 망나니, 칠공주파 쌍칼로 소문이 뜨르르 날 뻔 했던
나에겐 이 정도 칼질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장난에 불과하다.
이 말을 진실로 믿은 누군가로부터 결투 신청이 들어오는 불상사가 없길 바란다.
제발!
씨 부분을 뺀 오이, 붉고 노란 파프리카, 게맛살, 계란지단, 무순, 단무지, 참치.
무엇을 더 넣고 빼는 건 순전히 칼잡이 마음 대로.
날치알이나 햄을 추가 시켜도 좋고,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들이 영문도 모른채 생매장 당하는 이 비극적인 시기에
곧 죽어도 남의살은 먹어야 겠다 하는 사람은
소고기를 얄팍하게 썰어 불고기 양념으로 간해 볶은 다음
저 싱그러운 채소 사이에 눈치코치 없이 끼워 넣어도 된다.
굳이 그러고 싶다면.
딸을 위해서 최대한 인심 쓴 참치는 마요네즈로 살짝 버무려야 하는데
아직 열공중인지라 우선 폼으로만 담아 놓았다.
참치가 있으므로 깻잎은 필수.
햇 파래김을 슬쩍 구워 맞춤하게 잘라 놓으면 귀차니스트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내맘대로 김밥 준비는 끝.
요렇게 싸서 겨자장에 콕! 찍어 먹으면 봄날 초원의 냄새가 입안 가득 퍼진다.
'행복한 밥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밀부인 옆구리 터진 날 (0) | 2011.01.28 |
---|---|
한겨울에 먹는 쑥개떡 (0) | 2011.01.06 |
나만을 위한 어묵국수 (0) | 2010.12.15 |
꿀꿀이죽 (0) | 2010.11.28 |
고들빼기 김치 (0) | 2010.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