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하면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일삼는 빨간코 최씨아저씨처럼
늘 하늘과 맞장뜨며 서 있는 키 큰 은행나무 두 그루를
울안에 가두고 있는 기찻길 옆 은행나무집.
오가며 그집 앞을 지나노라면, 아주 공갈 염소똥 십원에 열두 개...
이제 겨우 말 배운 아기들도 먼 발치 그집이 보일라치면 콧노래부터 흥얼거리는 공갈네집.
부서진 연탄을 모아 가져가면 다시 반죽해 틀에 넣고
애들 머리통만한 쇠망치로 탕탕 두들겨 말짱하게 만들어주는 연탄집.
왼발이 땅바닥에 닿기도 전 올라간 오른발의 재촉으로 서둘러 걸음을 내딛는 바람에
넘어질듯 넘어질듯 치마꼬리 살랑대는 살살이아줌마네집.
한낯 땡볕만 빼고 이른 아침부터 해 저물 녘까지 톡톡톡 곰보돌 쪼아 맷돌이며 절구를 만드는 맷돌집.
말의 첫머리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시방 때문에 이름 붙여진 시방요할배네집.
말 많은 변호사네집,아는 거 많아 박사네집, 잘 먹어 아구네집, 온 동네 똥개들의 천적 개장수집,
뭔 놈이 밤톨처럼 매알매알하게 생겼다고 기생오래비집,짱구네집,
파란 대문집,돌담집,키다리집, 국수집,절집,무당집,이장집...
나는 집을 그렇게 찾고 부르고 기억하던 시절을 살았다.
누군가 길을 물어오면 곧바로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던 시절이기도 하다.
조오기 두 번째 전봇대를 돌아 감자밭 옆 개조심이 크게 씌여진 양철대문을 지나서요... 이런 식이다.
최신형에 신형이 삼세번쯤 더해져야 이런 입체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이 나오려나?
그래서 나는
마치 사물함이나 수인번호처럼 101호, 102호,103호...
건조하고 냉정하게 숫자로 통칭되는 요즘 집들을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
수년 째 방문하는 친구집도 갈 때마다 동호수를 물어 보기 일쑤인데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걸핏하면 주소를 틀리게 적거나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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