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멀리 살지만 오랜 세월 옆집에 살며
친정붙이마냥 지내던 동생이 왔다.
그간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해 얼굴 한번 디밀지 못했노라 한다.
내가 먼저 따순 말이라도 챙길 걸...
이미 늦었고 많이 미안했다.
밀린 얘기 풀어내기에 봉다리 커피 한 잔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야기하는 내내 우리는 서러웠고 아팠던 시간들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차오르는 눈물과 뜨거운 모과차를 함께 삼켰다.
언니, 오늘 버스를 타러 나오는데 바람이 엄청 차더라.
그런 날 있잖아 왜.
비 내리거나 살 떨리게 추운 날.
그런 날엔 집이 있다는 게 그렇게 감사할 수 없어.
정말 감사해.
고맙고 감사해.
엄동설한 길바닥에 나앉을 뻔 했던 때를 떠올리는 듯 했다.
아파트 화단에 선씀바귀꽃이 곱게 핀 초여름 어느 날.
장바구니를 들고 화단 옆을 지나다말고 그 앞에 앉았다.
참 예쁘다.
그래, 저 먼 산들에 야생화만 꽃이더냐.
가방에서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냈다.
앞태 옆태 정성껏 담고 나니 뒷태 욕심도 생긴다.
성큼 화단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찰칵 경쾌한 셔터소리.
어라? 흔들린 꽃들 뒤로 할머니의 빨간 슬리퍼와 지팡이가 보인다.
할머니 다리가 찍혔어요.
휴대폰을 들어보이며 내가 씨익 웃자 고마워요 하신다.
뭘 잘못 들었나 싶어 네? 뭐가요?
꽃도 고맙고 내 다리를 찍어줘서 고마워요 하신다.
바로 옆동 1층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평소 인사는 고마워요다.
1층 출입문 근처에 서서 바깥을 보며 서 계시다가
화단가에 앉아 친구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지팡이에 의지해 살살 걷기운동을 하시다가
내가 안녕하세요? 하면 곧바로 고마워요란 대답이 날아온다.
조금 장난기가 발동해 할머니 제가 뭐 드린 거 없어요,
당연한 인사만 했을 뿐이에요.
고맙긴 뭐가 고맙다고 자꾸 고맙다 고맙다 그러세요?
인사해줘서 고마워요.
아는 체 해줘서 고마워요.
하모, 고맙고 말고,하신다.
지금까지도 할머니와 내 인사법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하고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한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알게 된다
그것은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따뜻한 방, 함께 먹는 저녁밥상, 책동무, 말동무,
고마워요 할머니, 골목길 다롱이, 고물컴퓨터까지...
당연한 모든 것에 감사하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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